2004년 20부작으로 제작된 SBS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기억하십니까? 까칠한 재벌 2세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라고 소개를 하고 있네요. 저도 몇 편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도 아이들이 재밌다 해서 같이 얘기라도 하려고 본 것인데... 아이가 마지막 편을 보고 난 뒤의 반응은 “허무하다”였습니다. 전체 드라마의 이야기가 여주인공의 꿈이었다는 결말에 실망을 한 것입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을 법한 드라마가 화면 속에서 현실화될 때 우리들은 환호합니다. 환상 속의 그대가 눈앞에 존재할 때 마치 우리의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 같아 환호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인 걸 알면서도 "앞의 이야기는 모두 꿈이었대"라는 결론은 시청자를 실망시킵니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갔던 시청자들은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날 정도입니다. 파리의 연인 후로 꿈속의 이야기는 좀체 드라마로 제작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귀신도 이제는 꿈이라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구운몽을 이은 작품이 파리의 연인인 듯합니다.
독자가 찾아와 자기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작가의 말, 지금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잘 쓰지 않지만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책이 몇 권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던 작가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썼다고 합니다. “교묘하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이야기는 1955년생인 작가에게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사회현상이었을 것입니다. 들어도 또 들어도 끝이 없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무기력증을 유발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야기꾼은 현실의 무기력을 이길 방법을 고안합니다. 소설이면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야기의 틀을 꾸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민주가 탄생합니다.
강민주의 공격 대상은 남성의 폭력과 함께 남성으로부터 고통받으면서도 정신적 수동성으로 반격을 하지 못하는 여성도 해당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제 경험을 얘기하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저도 작가와 같은 세대라 남편의 폭력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요즘은 가정폭력이 주로 집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제가 살았던 동네에서는 집 밖 거리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햇볕이 좋은 날, 제 집 앞 골목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말릴 생각도 못할 정도로 폭력은 극심했습니다. 남편은 눈이 돌아 있었고, 아내는 본능적으로 폭력을 피하려고만 할 뿐 제대로 방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제가 나서서 남편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남편은 눈을 부라리며 저를 때리려고 했고 다행히 저의 완력이 그보다 세어서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팔을 비틀어 공격을 멈추게 하고 여자를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의외의 말이 들렸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맞을 짓을 했습니다” 맞던 아내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습니다. 남편의 팔을 잡았던 손에서 힘이 저절로 빠졌습니다. 남편은 이번에는 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무어라 항변하는 남편에게 제가 한 말은 “싸우시려거든 집에서 싸우세요. 동네 길거리에 나오시지 말고요”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왜 아내는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정신적 수동성이란 이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지요?
소설 속, 강민주의 행각은 의외의 사태로 종말을 맞습니다. 강민주가 소망한 자기에게 금지된 것은 강민주의 정신적 포로인 황남기에게도 역시 적용됩니다. 아무리 강민주가 자신을 사랑하지 말 것을 명령하더라도 황남기는 자기에게 금지된 강민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강민주가 예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을 강민주는 몰랐습니다. 신과 동격의 능력을 가졌다고 자신한 강민주는 덩치만 컸지 머리는 없다는 지능이 낮은 황남기의 소망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실패 하였습니다. 나에게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것은 아무리 복잡해도 예상이 가능하고, 실제 강민주는 완벽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하지만 타인이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것에 대하여 통제하려면 변수가 많아져 계획은 복잡해지고 실패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간사회의 많은 사건들은 관계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변수들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쨌든 작가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습니다.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소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해서 현실성이 없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닙니다. 꿈에서라도 소망하지 않으면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연인은 비록 꿈속의 소망이었지만, 실제 고현정은 재벌 2세인지 3세인지 까칠한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와 연애하고 결혼까지 합니다. 비록 이혼이라는 현실과 직면했지만 말입니다. 강민주의 주장은 이제 여성운동으로 현실의 무대에서 조명되고 있습니다. 비록 남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저의 결론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탈리아를 꺾은 한국 축구에게만 해당하는 소망이 아닙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그 황당함을 겁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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