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내 안의 역사. 전우용 지음. 푸른역사 간행 4

무주이장 2023. 10. 13. 14:47

박력과 추진력의 어원을 찾는 역사 여행

 

  추진력이란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힘을 말합니다. 제 아버지는 추진력이라고는 없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 미적지근하게 일을 하시는 바람에 옆에서 지켜보는 제가 늘 불만이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가지 않으시는 분으로 아버지를 평가했습니다. 남성다움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왜 했을까요? 선생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조선 사대부들이 숭상한 정신적 가치는 기개지조였다. 선비는 모름지기 범인이 따를 수 없는 기상을 지녀야 했으며, 선비의 마음은 어떤 압력과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됐다. 선비가 마음을 다 잡는 것이 바로 지조다.” “조선은 문치를 숭상했기에, 사대부다움이 곧 남성다움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일본인은 남성적이고 한국인은 여성적이라는 이미지를 조작해 식민 지배를 남성의 여성 지배와 등치 하려 했다. 학교에서는 방정한 품행만 앞세우고 기개와 지조는 뒤로 밀어냈다.”

 

  영화 친구에서 본 장면이 기억났습니다. 선생이 학생에게 묻습니다. “니 아버지 뭐 하시노?” 그러자 학생이 답합니다. “우리 아버지 건달입니다그 뒤는 모두가 알다시피 선생은 손목시계를 풀고 폭력을 쓰기 시작합니다. 학생은 선생의 말에 태도를 방정하게 오해를 살 위험이 없는 단어를 사용하여 공손히 답해야 했습니다. 대꾸를 한다는 것은 도전을 하는 태도로 인식되었으며,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반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세월을 산 것이 저의 청춘 시절이었습니다. 간혹 대들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복과 모멸이었습니다. “힘이 생기면 그때 달려들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어디서 엉겨 붙어” 어린아이들을 붙들고 힘 자랑하던 못난 선생들이었고 어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못난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선언 연설의 일부입니다.  노 대통령은 "저희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저희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식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제강점기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 국민들의 뜻은 분명합니다.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다움은 아무리 식민사관으로 비판을 해도 우리의 전통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이미지 조작은 청산의 대상입니다. 선생의 설명을 계속 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작된 가치관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자기 후배와 후손들에게 이런 태도를 심어주려 애썼다. 1970년대까지도 모범생의 핵심 덕목은 온순 착실이었다. 마음이 물러서 남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게 온순, 천하의 대세나 인간의 도리 같은 허황한생각은 하지 않고 실용과 실리에만 집착하는 게 착실이다. 그때까지도 많은 교사가 기개를 반항기와, 지조를 고집과 동일시했다.” 제가 다녔던 중고등학생 시절 선생이 저에게 요구했던 것들은 이렇듯 역사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일제가 조작한 한국인의 여성적 이미지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 초반, 충량이나 온순 착실과 배치되는 듯하나 사실은 그를 보완하는 덕목으로 박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더니 곧 일본인과 한국인에게 두루 통용되는 남성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추진력이라는 말도 사람에게 쓰이기 시작했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두 단어는 명령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진격해야 하는 졸병에게나 어울리는 단어였다.”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남성다움과 지도력이 혼동되기 쉽지만, 박력이나 추진력은 애초에 지도자에게는 물론 남성 일반에게도 필요한 자질이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아버지에게 졸병이 되라고 요구했던 자식이 용서를 빕니다.

 

사족: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일본인들이 군국주의 신민체제를 청산하려는 노력과 비교하면 매우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현재 일본인들이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항의하는 태도와 우리 국민의 태도를 비교하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촛불 집회를 일본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