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소설. 문학동네 간행

무주이장 2023. 10. 9. 18:41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 남에게 보여주기도, 나조차도 보기 싫은 현실을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아빠를 좀비로 만들고, 동생과 엄마를 죽일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기가 없는 살인은 소설을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왜 죽였대? 하고 물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자를 무시한 소설은 법을 무시한 독재자 거나 야당을 무시한 여당이 거나, 국회를 무시한 행정부와 같이 얼마동안 존재하다 사라질 이야기입니다. 어떤 작가가 금방 사라질 이야기를 겁도 없이 하겠습니까?

 

  사람은 일상의 평온함을 기대합니다. 일상이 위태롭다는 반증이지요. 사고 소식을 접하면 간혹 저곳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할 때가 있습니다. 철거 중이던 건물이 넘어져 버스를 덮치거나, 타고 있던 버스 좌석 밑 가스 연료통이 터지거나, 지하철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성냥을 긋는다거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다 기울어진 배의 객실 유리를 깨려고 황급히 의자를 던지는 모습을 뉴스 화면으로 보면서 일상의 위태로움을 매일 감지합니다.

 

  송지현의 소설 9편이 실린 책입니다. 처음 든 생각은 젊은 작가의 글이라 그런지, 궁둥이가 가벼운 마당극의 방자나 향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인기가 높았던 소설가 고 최인호가 기억났고, 방송작가로 유명했던 김수현의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탄력이 넘치는 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분의 글을 읽는다고 해도 옛날의 감탄을 회복할 수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약간의 반감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불행한 일상을 직간접으로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부부는 싸우고 이혼하고, 부모는 자식을 괴롭히고, 아버지는 부양의 의무를 함부로 방기 하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가벼운 리듬을 타며 글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옳지도 않을뿐더러 맞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아픈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위로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느끼는 아픔에 타인의 동의를 구할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잘 먹었던 만두도 옆에 있던 형이 없어지면 불안하여 울면서 토하기도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서 그런 것일 뿐이라는 생각은 틀렸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도 그렇습니다. 어떤 기억, 어떤 사건을 회상하면 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먹기가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송지현 작가는 불편한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 저 소설에서도 이어갑니다. 많이 죽인 가족은 그만큼 더 미워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며 가족을 죽입니다. 사실과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여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약간의 반감은 글을 잘못 읽은 결과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친구가 한 말을 소개합니다. “우리 서른 살까지만 살자고 한 거 기억나?” 비록 어린 시절의 말이라고 하지만, 친구들은 고단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대면하기에 두려웠을 것입니다. 작가라고 뭐 달랐겠습니까? 그렇지만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용기를 키웠습니다. 현실의 위태로움을 스스럼없이 대면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컷 이야기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면 작가의 소망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밝은 곳으로, 농담이 넘치는 곳으로, 이윽고 상처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저는 작가가 벌써 그 준비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기억하기 싫은 과거 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쉽습니다. 작가처럼.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