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사소한 추억의 힘. 탁현민 산문집. 메디치 간행

무주이장 2023. 10. 8. 16:55

  “십 년 전 제주에 왔을 때는 유배 온 심정일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은 때가 더 많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한 말입니다. 십 년 전은 문재인 대통령이 출마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후 저자가 제주에서 지냈던 때를 말합니다. 정권을 쥔 세력에 미운털이 박힌 것은 십 년 전이나 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변한 것은 저자의 마음입니다. 사소한 추억의 힘을 알게 된 후 일어난 변화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을 ‘사소한 추억의 힘’으로 정했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를 안 것은 책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다 국가 행사가 뭔가 다른 것 같아 보기 시작하면서 탁현민이라는 사람을 알았습니다. 아니 그전에 그의 책에서 여성 비하의 글이 발견되었다며 비난하는 기사를 보고 희성인 탁 씨라서 잠깐 기억했다 잊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오면서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선 장군의 유해를 운구하는 비행기를 맞은 것은 우리나라의 공군기들이었습니다. 우리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고, 호위를 하기 전 편대장이 홍범도 장군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과 함께 경례를 하는 모습에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입장으로 이입이 되어 저는 독립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후배들이 대견하여 무어라 말을 하고 싶지만 가슴이 막힐 정도로 감격이 솟구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해방 전선에서 독립군의 이름과 빨치산의 열악한 장비로 일본군과 목숨을 바쳐 싸웠던 장군으로서 독립된 대한민국으로 귀국하는 그 순간은 죽어서도 그렸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 광경을 봤던 우리 국민 누구도 감격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본인이거나 친일부역자의 자손들뿐이었을 것입니다.

 

  저자가 자라온 환경과 그가 경험한 일들이 그렇게 특이하거나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 물론 선생을 찾아 대학을 결정한 것, 공부보다는 등단을 목적한 대학 생활 등이 보통의 학생들과 다르다는 점은 있지만 개성을 강조하고 나만의 삶을 찾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변화의 시대를 감안한다면 저자의 학창 시절이 그리 특이하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지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그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결정했던 결과입니다. 그 결정이 어떤 경우에는 좌절감과 패배감을 주었고 그 결과 스스로 그의 제주행이 유배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5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큰 무대를 경험하고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의미와 감동을 만들기도 한 후에는 만족한 제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생산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좀 더 유약했으면 한다. 매사 별 뜻 없고 의미 없었으면 한다.” 푹 쉬고 마음껏 유약해지고 빈둥빈둥 놀며, 뜻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런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개구리가 도약 전 잠시 웅크리는 자세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도약을 위한 휴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다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저자도 말합니다. “그냥 필요하다. 대단치 않은 것들,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삶에 큰 위로가 되어 주니 그래서 필요하다” 제주에서 사소한 것들에게서 큰 위로를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소한 것들의 힘을 모아서 위로받고 그 위로가 우리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저자가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외로움과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듯이, 우리도 외로움을 느끼고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탁현민 당신이 잘하는 일을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