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내 안의 역사. 전우용 지음. 푸른역사 간행 3

무주이장 2023. 10. 3. 11:16

공동체 의식과 가부장제 윤리

 

 

  오늘은 회사에 관한 역사입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회사원은 직원이 아니라 출자자나 주주라는 뜻이었습니다. 회사의 운명에 연대 책임이나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들만 회사원이었고, 회사에 고용되어 급료는 받는 사람들은 ‘고원(雇員)’이나 ‘용인(傭人)’으로 불렸습니다. 고용인에도 여러 부류가 있어 부기나 경리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원, 영업을 담당하는 외교원, 공장의 직공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사원이면서 회사 업무를 지휘하는 사람은 보통 ‘총무’라는 직함을 가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회사원은 일본의 예를 따라 취체역이나 중역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취체역이란 단속, 또는 감독이라는 업무라는 뜻이고 중역은 중요한 업무라는 뜻입니다. 사원이 중역이 되자, 사무직과 영업직 고용인이 회사원이라는 이름을 차지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이름의 마술’이 펼쳐졌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갑자기 ‘우리 회사’로 바뀌었고, 회사와 자신이 운명적으로 결합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회사원과 그 가족들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같은 물건이면 우리 회사 제품’을 골랐습니다.

 

  회사들은 고용인의 명칭을 살짝 바꾸어줌으로써 충성심에 불타는 엄청난 지원군을 얻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내내 식민지 조선의 회사 수가 늘어나기는 했으나, 그래도 인구의 대다수는 농민이었습니다. 직업란에 ‘회사원’이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일제강점 말기에도 전 인구의 3~4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압축성장과 더불어 경제활동 인구의 다수가 회사원인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시기 회사들은 개항 직후의 초기 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회사를 가정처럼, 사원을 가족처럼”이라는 구호를 천편일률로 내걸었습니다. 한 사회의 자본주의화 과정은 곧 중세적 공동체의 해체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원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 기업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말로는 ‘공동체 의식’이었으나, 엄밀하게는 ‘가부장제 윤리’였습니다. 회사 사장이 말하는 가족은 정확히 ‘가부장제 가족’이었습니다. 사장은 무한한 권력을 누리는 가부장이고, 사원은 가부장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하는 가족 구성원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런 허위의식 속에서나마, 회사가 계속 성장하는 동안에는 사원들도 성장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기업 구조 조정,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기로 수많은 회사원이 ‘가족 같던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원 신분에서 다시 임시고용인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기업문화는 사원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을 확실히 파괴했습니다. (174~177쪽)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도 젊은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이 많은 직장 상사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저도 젊은 직원이 불편합니다. 이런 불편함은 제가 경험한 직장과 그들이 경험하고 원하는 직장의 개념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회사에서 세끼를 해결하고 밤늦게 회식을 한 후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와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고단한 몸을 뉘어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아침이면 새벽같이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저와 근무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원하지 않는 연장 근로를 거부하며, 이따금 있는 회식도 자신들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허용되지 않는 직장문화가 정착된 그들의 경험이 다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지 못하면 발언권이 없어진 세상입니다. 못난 부모라도 효도를 다 하라는 말은 화석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떤 부모도 자식이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가정처럼 운명공동체고 회사는 사원을 보호하고 지키리라는 기대는 ‘허위의식’이었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사원은 남이었습니다. 가정의 가장처럼 굴던 사장은 사원을 나 몰라라 배신했습니다.

 

  '라테'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위계질서가 명확한 곳 중의 하나가 공무원 사회입니다. 누군가가 뇌물을 바치면 상사에게서 다시 상사에게로 상납을 하던 문화가 정착된 곳이었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상납구조는 초기 밭 전(田) 자 구조였습니다. 1/4을 담당자가 먹고 나머지 3/4은 상납하는 구조였습니다. 네 명이 나눠먹었다는 말입니다. 이 구조가 눈 목(目) 자로 변합니다. 최상위층 공무원이 먹기만 하고 책임을 분담하지 않기에 상납구조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상납의 목적은 본래 문제가 발생하면 무마시키는 일을 부탁하는 것이기에 무마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를 배제한 것입니다. 그러다 눈목자가 날 일(日) 자로 변경됩니다. 담당자와 바로 직속상관이 나눠 먹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이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과장급의 공무원이 책임을 회피하며 아래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기사가 많이 보입니다. 이제 최종 구조는 입 구(口)로 바뀝니다. 어떤 놈도 믿을 수 없다면, 먹고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구조로 변한 것입니다. 비록 부정적인 뇌물 수수의 관행이지만 바뀐 회사 풍경과 유사합니다.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한참도 전에 바뀌었습니다. 중앙선을 무시하고 유턴을 했던 운전자가 과거 경험으로 면허증과 함께 몇 만 원을 같이 전달했다가 뇌물공여죄를 추가하겠다는 교통경찰의 통보에 동승한 제가 급히 사과를 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젊은 교통경찰관의 모습이 너무도 결연했기에 존경까지 하고 싶었습니다. 돈을 주었던 운전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저와 그분의 나이차는 5년입니다. 믿을 것은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고 법이 되었습니다. 불법적인 지시와 명령은 따르지 않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불법의 죄를 물으면 지시하고 명령한 사람은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최근 해병대에서 일어난 항명죄의 피고인인 되어버린 박 대령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가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본질을 알면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인간 세상이 변하는 것은 조석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일이 년에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변화는 인과의 법칙도 적용되고, 경험칙도 적용이 됩니다. 간혹 변칙도 발생하지요. 사람의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바뀌고, 인간의 욕망이 부딪히면서 세상은 변화합니다. 어제 다녔던 회사와 오늘 다니는 회사는 다른 모습입니다. 제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젊은 직원들을 용인하고 지켜볼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선생의 글을 통해 회사의 역사를 회고하다 보니 저의 역사가 정리되는 듯합니다. 회사는 저의 역사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직업은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 요소다. 성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활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직업 활동을 통해 세계를 구체적으로 경험한다. 사람들의 세계관은 그의 직업적 이해관계와 밀접히 결합해 있다.” 선생의 말이 하나 틀린 구석이 없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