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라고요?
“많은 사람이 신앙의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과 아예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나뉘죠. 그 사이의 균열을 넘고 싶었습니다.” 저자의 인터뷰 일부입니다.
주인공 피비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결혼생활동안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아내를 찾아 미국으로 옵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이 심한 집안에서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잘못을 보상하려고 왔겠지만, 사람 변하는 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던 중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시 헤어집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신을 아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을 믿지 않는 딸은 양극단에 서게 됩니다. 아버지와 딸 피비 사이의 균열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균열을 어떻게 넘어설까요? 균열을 넘어서기는 한 걸까요. 아버지는 딸의 정보를 자기가 믿는 사람에게 주고 딸에게 접근을 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믿었던 자는 광신도 집단의 리더였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은 딸을 광신도에게 넘기게 됩니다. 아버지의 신과 광신도의 신, 그리고 딸이 믿는다고 한 신은 같은 신일까요? 이들은 모두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피비와 아버지의 균열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닌 듯합니다. 둘은 다 믿음을 가진 자이니까요.
피비가 사랑한 남자가 있습니다. 윌이라는 남자입니다. 윌은 신학대학을 다니다 신을 포기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비가 윌을 사랑한 것과 윌이 피비를 사랑한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피비가 더 사랑한 것 같기도 하고, 윌이 피비를 더 사랑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피해 도망한 피비와 한때의 신앙을 버린 윌은 처음 만날 때는 균열이 없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미울 때면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놀고 공부하고 일하며 삽니다. 그런 둘의 관계를 균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비가 제자라는 종교집단에 가입하고 모임에 자주 가면서부터 둘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합니다. 윌은 종교집단의 리더인 존을 믿지 못하고, 그런 존과 만나는 피비를 믿지 못합니다. 믿음의 균열이 발생하고, 둘의 동거는 깨집니다. 이제 둘 사이의 균열은 마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균열로 보입니다. 소설은 이 둘의 균열을 넘어서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도 같습니다. 한때 믿었으나 그 존재가 없음을 확인했다는 윌과 아버지의 신을 피해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던 피비는 만나서 사랑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지만, 어느 날 피비에게 신이 생기고 그 신 때문에 윌과 헤어지면서 생긴 균열을 메우려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피비와 윌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피비가 임신중절수술병원을 폭파하고, 그 와중에 어린 학생 다섯 명이 폭발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둘은 여전히 사랑하는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물론 이야기를 주도하는 윌이 하는 이야기라 다 믿을 수 없다면 사실관계가 달라지겠지만 둘의 사랑을 확인해 줄 증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윌과 피비의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피비와 친했던 친구는 줄리언입니다. 줄리언과 윌은 피비 때문에 친한 사이입니다. 피비가 폭발 사고를 일으킨 후 윌은 길을 가다 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줄리언을 만납니다. 하지만 줄리언은 윌을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줄리언의 팔을 잡은 윌은 줄리언이 쓴 안경이 전등 같아 놀랍니다. 전등처럼 겨눈 안경 속 눈초리는 매섭기만 합니다. “너하고 말도 섞고 싶지 않아. 나는 네가 어떤 놈인지 알아, 윌.” 무슨 말을 하냐는 윌의 반응에 줄리언은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냅니다.
“걔는 네가 다치는 건 싫다고 하더군. 나는 너무 답답해서 후회할 말들을 뱉어버렸어. 그 이후 우린 서로 연락 안 해. 걔는 너를 사랑했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됐지만. 피비가 제자에 완전히 빠져든 건 너 때문이야. 네가 그걸 깨닫길 바라. 오 네 실체를 사람들에게 까발리는 상상도 했지. 하지만 네가 지금 그대로 지옥에서 살게 해 줘야겠더라고. 누군가가 지옥에 박혀 있기를 바라는 건 처음이야.”(306쪽)
신앙인과 비신앙인 양극단의 균열을 넘고 싶어 한 작가의 이야기는 신을 믿는 누군가와 신을 믿지 않는 누군가를 전제로 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신이라는 이름이던 어머니든 아버지든 아니면 친구든 애인이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자기에게 바쳐진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는 존재 그들의 균열을 얘기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피비는 자기의 운전 미숙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사고 순간에 자신을 보호하려고 안전벨트를 풀고 피비를 안으며 딸을 보호한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죄를 잊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 죄를 용서받고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회복하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죄에 짓눌려 악몽 속에나 존재하는 어머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균열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요. 피비가 너무도 사랑한 윌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광신도에게 속아 몸과 마음을 다 주는 어리석은 존재로 오해받을 때 피비는 자기가 사랑한 윌과 자기를 사랑한 윌 사이의 균열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다른 존재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신의 이름은 혹시 ‘사랑’이 아닐까?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균열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가 이 소설을 쓴 1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을 법도 합니다. 그게 왜 10년이나 필요하냐고요? 말이 ‘사랑’이라고 표현하니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랑이라고 믿는 사랑 아닌 것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 보시면 저는 10년도 짧은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라고요?”라며 이의와 불만을 제기하더라도 저의 답은 한결같습니다.
“그럼요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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