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여경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는 마약과 금을 밀수하는 여성 범죄자를 단속하기 위해 여자 경찰 채용을 검토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인 칼을 여자에게 줄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여자 경찰이 처음 생긴 건 1946년 5월 27일.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입니다. 여자 경찰을 뽑은 기관은 운수경찰청이었답니다. ‘여행의 명랑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같은 해 6월 4일, 일반 경찰 업무를 담당할 여자 경찰 시험이 치러졌습니다. 100명을 뽑을 예정이었는데 지원자가 64명뿐이라 전원 합격시켰습니다(어디나 첫 시험은 쉽습니다. 다만 근무지에서의 어려움은 더욱 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 여자경찰과장 고봉경의 전직은 피아니스트, 수도여자경찰서장 양한나의 전직은 유치원 원장이었습니다.
주취 난동자 제압 문제로 여자 경찰에 관한 논란이 거셉니다(2019년도 일이라고 하지만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자 경찰 무용론과 함께 여경에 대한 비난이 드셌습니다). 주취 난동자가 여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경찰 개개인의 ‘특기’와 관련해서는 검토할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나, 모든 경찰에게 ‘균등한 힘’을 요구하는 주장의 저변에 혹시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인 칼을 여자에게 줄 수 없다.”던 일본 군국주의 의식의 잔재가 깔려 있는 건 아닐지요?
선생이 문제를 보는 시선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웁니다. 경찰의 ‘특기’에 맞는 보직에 배치하는 것과 여경 모두가 강력한 물리력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는 지적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여경을 비난한 사람들이 일본 군국주의 의식의 잔재가 깔려 있어 그랬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아마도 여자가 남자의 직역에도 침투했다는 그래서 자신의 직업 선택의 폭이 줄었다는 남자들의 불만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찌질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의 책을 보면서 상식이 늡니다. 문제는 제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띄엄띄엄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래도 제 주위 사람들은 재미있어합니다. 덩달아 저의 지적 능력에 위압되어 저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같이 만나는 분들의 정치성향은 서로 상극이지만 아직도 그분들과 잘 지내는 이유에는 선생님 같은 분들의 글이 화력지원을 해줘서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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