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용어 풀이, 사용례: 공정 2
공정이란 말이 조금은 이해될 듯합니다. 기계적인 중립으로 공정을 가장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불공정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가장 바른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 공정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선생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역사라는 악보에서 전쟁이나 혁명, 자연재해 같은 큰 사변들이 하나의 악절을 이룬다면,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자연적 조건에 대한 사람들의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반응은 각각의 음표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이 ‘단일 사건’을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그 안에 개인과 가족 단위의 숱한 ‘작은 역사’들이 밀집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파산, 부도, 실직, 전직, 경매, 별거, 이혼, 가정불화와 가정폭력, 진학 포기, 자살 또는 자살 미수 등의 개인 또는 가족 단위의 사건과 선택들이, 이 사태의 그늘에서 일어났습니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중요 변화 중 하나가 ‘비정규직’ 양산입니다. 당시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직’했다가 자영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이 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비상사태에서 ‘공정성’ 문제를 따지기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지금의 취업난에서 중심 문제는 ‘일자리’ 자체보다는 ‘좋은 일자리’, 즉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런 형편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입니다. 비정규직을 당연히 여겼던 ‘일자리’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혜택’을 입는 사람이 나오는 건 부득이한 일입니다. 정규직이었던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인생의 파탄을 겪은 사람이 많았던 것처럼.
비정규직이었던 사람을 다 쫓아내고 새로 정규직을 모집해서 일자리를 채우는 게 ‘공정’한 방법일까요? 아니면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묶어두는 게 ‘공정’한 방법일까요? 누군가 혜택을 입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빚을까요? 지금의 취업준비생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일자리로 인해 어떤 피해를 볼까요? 취업 준비생들의 기회는 그대로 두면서, 질 낮은 일자리를 줄여가는 것이 더 ‘공정’한 길 아닐까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말고,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한 번 시험에 합격하면 평생 일자리가 보장되는 사람들과 매일 해고 걱정하면서 평생 일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세상은 ‘공정’한 세상일까요?
2020년 6월, 인천공항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인천공항 정규직들이 반대 농성을 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넣어 소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사in의 전혜원 기자가 쓴 기사를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시사in 669호 ‘인천공항 정규직은 공정한가’ 전혜원기자 ) 공정의 시작은 사심과 사욕에 의해 뒤틀린 것들을 버리고 가장 바른 것을 고르는 것이라는 뜻풀이에 동의한다면 답은 절로 보입니다. 3년 전의 일이 역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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