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비경제인이라고? 누가 그러던?
진심이 보이면 사람은 감동합니다. 슬픈 이야기에도 감동하고 기쁜 이야기에도 감동합니다. 답답한 현실이 보이면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인 듯 갑갑하지만 그래도 감동합니다. 감동을 하면 신체는 반응을 보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자주 흘렸습니다.
조카가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간호사 자격증을 딴 후 일산의 종합병원에 취직을 한 후였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병원 측의 요청을 전했습니다. 다 큰 성인들이 취직을 했는데 병원을 소개한다는 내용으로 부모를 초대한다 것이 의아했습니다. 조카가 들어간 병원은 T/O가 없어 우선 35명의 간호사를 임시직으로 고용한 후 T/O가 확보되는 대로 순서대로 정식 간호사로 고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병원 측의 요청에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정직원으로 고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자리에 참석한 의사들은 무슨 말을 묻는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행정실장이 제 질문을 해석해서 얘기했습니다. “계약직으로 두는 걸 염려하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제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황당한 질문이란 걸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우리들을 부른 것은 간호사들의 퇴직이 하도 심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설득해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불렀던 것입니다. 제 조카는 35명 중 33명이 퇴직을 한 후 병원을 그만두었습니다. 3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병원의 진실을 안 후 조카에게 병원을 계속 다니길 설득했던 제가 미안했습니다. 사과를 했습니다.
병원은 간호사들을 태워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태움’이 간호사들 간에 있는 선배와 후배의 갈등 즘으로 이해하고 쓴 기사들이 많지만 사실은 간호사들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근로조건을 바꾸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을 괴롭히는 사적인 감정의 배설구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일을 하는 간호사들 간에 불행한 결과를 낳지 않으려는 생존의 수단이 태움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기계도 부속을 교체하면 시운전을 합니다. 제대로 교체했는지, 부속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알기 위한 시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신참의 간호사가 제 기능을 다하기까지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수련을 위한 인력과 시간을 병원은 제공해야 하지만 비용절감을 위해 간호사의 몸을 갈아 병원을 운영한 것이 간호사들 간의 ‘태움’의 원인이었습니다.
저자는 현역 간호사로서 21년의 세월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일했던 곳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제가 읽은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입니다. 간호사가 사람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간호사를 사람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를 가르치면서 경제인을 전제로 학설을 설명합니다. 경제인이란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동기와 같은 외적 동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경제적인 이득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사람은 비윤리적이어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전제로 하고 그런 사람을 이성적이라고 판단합니다. 간호사도 경제학의 영향을 받는 사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간호사의 행동을 우리는 비난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현장에서 늘 묵살되고 비난도 받습니다. 간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더니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의사들이 할 일을 간호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검사들이 나서면 의사들은 지금 압수수색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간호법이 거부된 후 대한간호협회는 그동안 의사들의 지시로 해온 불법의료행위를 거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사례로 든 것을 보겠습니다.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해온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L-tube와 T-tube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간호사는 비경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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