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폐견. 전우용의 시사상식 사전. 새움출판사 간행 7
역사학자 전우용, 그를 안 것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묻는 어떤 말에도 거침없이 기원과 출처를 알려주고,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용례와 잘못된 용례를 드는 해박함에 놀라서 그가 쓴 책을 읽으면 나도 상식이 늘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 고른 책입니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는 말인데, 달이야 원래 항상 언제나 그 시각에 그 자리에서 뜨고 지는 것인데 개가 달을 보고 짓는 것은 어떤 연유일지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씩 같이 해결하는 의미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상식: 우리나라의 관직체계
1894년 갑오개혁 때, 조선 전래의 관직 체계를 개편하여 크게 칙임관, 주임관, 판임관의 세 등급으로 나눴습니다. 이 관직 체계의 골격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가. 칙임관: 대군주(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사람, 대군주(황제)와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일은 칙임관만 할 수 있습니다. 거칠게 구분해서(이하 생략) 정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 주임관: 칙임관의 주청에 따라 대군주(황제)가 임명하는 사람, 실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 판임관: 칙임관이 재량으로 임명하는 사람, 실무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대군주(황제)와 논의를 거듭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게 칙임관의 일이었고, 그 정책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 판임관들에게 실무를 나누어 맡기는 게 주임관의 일이었습니다. 주임관도 당연히 ‘정치적 소신’을 가질 수 있지만, 그는 ‘정무적 판단’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공무원 직급으로 보자면, 칙임관은 장차관급, 주임관은 국과장급, 판임관은 주무관급입니다. 사무관은 주임관 최말단에 해당합니다. 청와대와 장차관 사이에서 합의된 ‘정무적 결정’을, 법과 규정을 지키면서 집행하는 방안을 마련해 주무관들에게 맡기는 게 임무입니다. 공무원은 중앙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뉩니다. 지금 얘기한 것은 중앙 공무원에 해당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요즘 공무원들 불만이 많을 겁니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말도 나올 법합니다. 철밥통이라며 공무원 직업의 안정성을 질투하는 말도 있었지만, 어공이 늘공을 부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터라 철밥통이 불안해졌습니다. 좌불안석입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양평고속도로를 김건희 노선으로 변경하려다 들켰습니다. 장관은 자기 결정에 대하여 비판을 하면 깽판을 놓겠다며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연일 떠들어댑니다. 경기도에 보낸 문서는 사업내용과 첨부된 도로사업 노선도가 불일치합니다. 행정업무는 법에 규정된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어공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시키는 대로 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고발이나 고소를 당할 위험이 높습니다. 이놈이 와서 차고, 저놈이 와서 차는 밥통이 철밥통이 되었습니다. 직업공무원제도가 위험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상식을 공부하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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