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단어의 집. 안희연 산문집. 한겨례출판 간행 2

무주이장 2023. 7. 5. 13:57

시인이 들여다봐야 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특정 직업인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KBS 방송수신료 분리 징수와 관련해서 자신은 KBS 방송은 보지 않는다고 하고(그러니 분리 징수 안을 찬성한다는 말이죠?), 어떤 사람은 그 방송국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고, 왜 수신료를 거둬야 하는지 그 방송국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냉정하게 말을 합니다. 이 분들은 애초 KBS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종사자들에 대한 기대가 없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방송인이나 기자 프로듀서 작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어떤 자부심을 가지든 대중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인정받을 자리에 있으면서 회사원으로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불행이 심하지 않길 기원합니다.  

 

 시인은 시 낭독회에 참가한 경험을 얘기합니다. 참석자 중 한 분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의 모양을 상세히 들려주신 뒤 시인의 시를 낭송하였는데, 체통 없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합니다. “내가 쓴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에 저토록 깊이 스밀 수 있다는 것이 진짜를, 진짜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시인은 진짜가 뭔지도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진짜를 쓰겠다는 의지는 겸손을 부인합니다. 이런 다짐을 하는 사람이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라는 것에 놀라면서 우리는 시인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갖고 있구나 자각했습니다.

 

 시인은 루어를 들면서 시인의 마음을 말합니다. “정신의 검은 구멍, 거대한 허기 앞에서는 그것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덥석 미끼를 물어버리고 싶어 지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앞질러지는 마음을 생각한다. 내가 시를 통해 들여다봐야 하는 마음은 사실 그런 마음일 테다.”

 

 우리는 사회가 법과 정의에 근거하여 예정된 방향으로 전진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철밥통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철밥통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원칙의 존재를 믿습니다. 원칙과 현실의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개선의 의지를 다시 숫돌에 벼립니다. 벼린다고 벨 것이 갑자기 자기 목을 내놓고 내 목을 베거라하지 않습니다. 윤회의 지루함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괴로운 사람에게 그래요 나도 당신 마음을 압니다. 위로합니다. 같이 갑시다말을 건네고 가만히 옆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의 마음에 각인시킨 기대감이란 게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KBS를 구성한 종사자들은 예상했던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란이 일었던 원인 중 하나도 소설가 한 분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 것은 오롯이 안희연 시인의 글 때문입니다. 시인이 들여다보는 곳을 같이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만 그렇다고 시인이 큰 부담을 갖지 않길 바랍니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으니까요.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