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부키 간행. 장하준 지음 15

무주이장 2023. 7. 4. 10:28

고추 수로 매운 정도를 표시하는 쓰촨 요리, 표시가 없어도 고추는 들어있다.

 

 저자는 2000년대 초 런던에 있는 쓰촨 요리(중국 사천요리) 전문점을 간 경험을 들려주면서 메뉴에 고추 표시가 없어도 고추가 들어가서 매웠다고 합니다. 종업원의 설명은 고추 표시는 음식에 들어 있는 고추 양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매운 정도를 표시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을 하더랍니다. 미국에서는 고추의 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을 스코빌 척도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기준은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이 1912년 만들었는데, 마른 고추를 알코올에 담가 매운맛을 내는 요소인 캡사이시노이드를 녹여낸 다음 설탕물로 희석해서 5명으로 이루어진 시식단에게 맛을 보게 해 매운맛이 느껴지는지 판별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1만 스코빌은 어떤 매운맛인지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행히 매운맛의 주역인 캡사이신은 실제로는 직접적으로 조직을 손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몸이 그런 손상을 입고 있다고 뇌를 속이는 것이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제 딸의 위장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로 들려 반갑습니다. 그런데 믿어도 되겠죠?)

 

 저자가 쓰촨 고추로 시작한 얘기는 GDP 산정에 중요한 경제활동인 무보수 돌봄 노동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경제 척도인 GDP(국내총생산)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만 포함합니다. 시장 활동만을 계산하는 관행은 경제 활동의 엄청나게 큰 부분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직접 기른 농산물을 시장에 팔지 않고 직접 소비하는 경우, 가정과 공동체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행해지는 돌봄 노동, 이런 활동을 시장 가격으로 환산하면 GDP30~40퍼센트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맘’ ‘워킹맘이라는 표현은 집에 있는 엄마들은 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말입니다. 실제 집에서 여성이 감당하는 돌봄 노동의 양이 밖에서 남성 배우자가 하는 임금 노동의 양보다 더 많은 경우가 빈번함에도 집에 있는 여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성차별적 편견이 강화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돌봄 노동이 저평가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못 받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물질적인 불이익을 가져오기까지 합니다. 국민 기초 연금 수준을 넘어서는 연금은 평생 받은 보수와 연동되기 때문에 돌봄 노동으로 유급의 경제 활동을 적게 한 여성의 경우 그 결과 노년 빈곤에 시달릴 확률이 높아집니다(세상일은 모두 이유가 있네요. 아내의 연금액이 작은 것에 이제야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제 아내의 가사 노동의 대가는 저녁에 제가 해주는 안마가 다입니다).

 

 저자는 시장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시장이 결정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바꿀 방법을 제안합니다. 인간 복지에 무엇이 중요한가 보다는 왜곡된 시각이 만들어졌다며 첫째, 뭔가의 가치가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버리자고 합니다. 우주여행, 심해여행이 그렇게 높은 가치가 있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관점의 변화는 관행의 변화를 통해 현실에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관점과 관행의 변화는 제도 변화를 통해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에게 고추가 없는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듯, 돌봄 노동이 없는 삶은 인류 모두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자는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맵게 얘기를 합니다.

 

 저도 상상합니다. 돌봄 노동을 하는 모든 분들의 파업을 생각합니다. 낮은 가격으로 쉽게 썼던 돌봄 노동자들도 포함합니다. 이들의 생활비를 일정 기간 기금을 만들어 지원합니다. 세상이 섭니다. 잘 안 돌아갑니다. 그러자 이들의 노동의 가치가 적정 가격으로 매겨집니다. 그러면 다시 돌봄 노동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효율적인 경제활동으로 돌봄 노동자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세금도 내고, 기금도 내면 인간의 복지가 좋아집니다. 가족 중에 누구든 돌봄 노동자는 있을 터(없더라도 언젠가는 생길 터) 모든 국민이 기금을 내게 합니다. 법인도 내게 합니다. 기금 내는 것보다 돌봄 노동 값을 올리는 것이 더 낫도록 해야 합니다. 기금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불만은 폭리를 취하는 노름판(주식, 부동산 등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곳)을 조지면 된다고 하면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래도 입이 불퉁하면 압수수색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이고 남의 얘기를 경청하면 세상을 경영하는 지혜가 생깁니다. 제가 어디 장관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안 될까요?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