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막에 관한 시인의 글에 대한 딴지걸기
글쓰기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평이라고 책을 읽고 느낌을 적거나 요약을 하는 일은 사실 글쓰기라고 하기에 적절한 단어 사용이 아닐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실 테니까요. 서평을 핑계로 딴지를 거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시인 안희연이 고른 단어를 주제로 쓴 산문을 모은 책입니다. 시인이라고 하면 공연히 주눅이 드는 것이 제 습관이 되었지만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 시 구절이 몸을 휘감고 정수리를 노리며 달려드는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왜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 이해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읽는 사람이 전율을 느낄 정도라면 그 시를 창작한 시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당연한 일아니겠습니까.
시인은 ‘피막’이라는 말, 그 단어에 영혼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면서 기름에 피막이 생기는 시간과 의미를 가늠합니다. “적어도 몇 년에 걸쳐, 병 속의 기름이 이곳에 ‘고인’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빚어진 결과 아닐까. 그 피막이라는 거,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어렵게 건너온 시간의 주름일 것이다.”
할머니가 애지중지 사용하던 참기름은 푸른 소주병에 보관했습니다. 어찌나 아끼시던지 한 숟갈 얻어먹기가 어려웠습니다. 창천에 별만큼이나 멀리 있는 조미료였습니다. 그렇게 아끼던 참기름을 사용하면 참기름은 몸피가 줄어듭니다. 전에 있던 몸피는 병에 흔적을 남깁니다. 오랜만에 줄어든 참기름은 전에 있던 높은 곳을 향해 눈을 치켜 뜨고 병에 그어진 과거를 추억합니다. 참기름이 남긴 몸피의 역사는 고스란이 푸른 소주병에 줄을 그었습니다. 한 줄 두 줄 이어진 여러 줄. 이것이 피막에 관한 저의 기억입니다.
아마 서로의 피막에 관한 관념이 다르니 쓴 사람과 읽은 사람의 느낌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시인은 피막에 관한 자신의 서술에 누군가는 분명히 딴지를 걸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는지, 말의 방향을 틉니다.
“과학적으로 틀린 설명이라 해도 상관없다. 모든 현상을 과학적,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려 들면 세상 모든 신비는 몸을 틀어 삶의 반대편으로 떠나버릴 테니까.”
서평은 써야 하겠고, 괜히 시인의 비과학적 감성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시인의 글은 아침마다 몇 꼭지 종종히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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