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이란 무엇인가
솔직함은 매력을 가집니다. 돈 많은 우리 회사 회장님을 오랜 시절 같이 겪었던 사람이 “너네 회장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라거나, “대통령이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라거나 “논문 심사에 참여한 교수가 심사할 논문을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라는 말을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서 들으면 가짜 뉴스라거나 헛소리로 들었을 것을 회사와 거래하는 거래처 사장이, 대통령 비서실의 사람이, 논문을 작성한 학생이 한 말이라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 사람의 용감한 솔직함에 매력을 느낍니다. 용감하기만 하고, 솔직하기만 하면 그 매력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거래를 유지하고, 비서실에서 건재하며, 학위를 따고 소소한 걱정을 하며 산다면 매력은 치명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저자의 책에 매력 있는 글이 다수 보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비슷한지 저자의 글 중에서 인기를 끈 글이라고 소문난 글은 제게도 달리 읽혔습니다.
“위력이란 무엇인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란 무엇인가.” “서로 겨루거나 비교되거나 대비되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란 무엇인가.” 발주처의 회장과 수주처의 사장, 대통령과 비서실의 직원, 논문 심사 교수와 논문작성자인 학생, 교수와 수업을 듣는 학생사이에는 위력이라는 게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확고할수록 존재할 수 없는 위력이 달려들면 그에 유효하게 대응하지 못한 자는 수치의 기억을 가지게 되고, 배운 당수로 앞에 놓인 탁자를 쪼개는 위력도 보이지 못합니다. 이이제이라고 했던가요. 위력은 위력으로 맞붙어야 하건만 그러지 못한 자의 비애는 심한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가 화제가 됩니다. 사건과 사고들의 원인이 분노고 폭력이고 강제입니다. 저자는 위력이 자신의 실패를 절감할 때 나타내는 징후가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사는 사회는 이제 위력이 붙어있을 자리가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네가 뭔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내 생각은 달라” 위력을 인정하라는 상대에게 당신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너무나 쿨한 대응의 증거들이 오늘 뉴스에 도배된 사건 사고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위력이 무시되는 사회를 만든 기초가 된 전설적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대학원생이 ‘개인지도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등록금을 냈던 것에 항의하여 어느 날 교정을 걷던 원로 교수를 불러 세우고는, 당신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지도한 적이 단 1분도 없는데, 왜 이 돈을 받습니까,라고 따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위력에 대항한 대학원생은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대학원을 그만두었고, 지금은 남쪽 지방에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복지시설을 운영하게 된 것을 축복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위력을 깨뜨리는 초석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개인의 희생으로 위력에 버티던 우리 사회가 그 후 모든 진료과목에서 모든 의사들이 받았던 별로 특별하지 않았던 ‘특진비’를 없앴던 것은 개인들이 모인 의료보험조합이 해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그의 행적으로 얻을 개인적 평가를 권력을 이용해 억지로 만든 위력 그 자체가 사라지면, 위력의 실패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존재의 행위’는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력의 실패로 인한 병적 징후인 분노와 폭력 강제는 사라진다는 희망찬 미래를 의도치 않게 예측한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자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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