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변진경 지음. 아를 간행

무주이장 2023. 7. 1. 08:58

  경제가 어려울 때면 회사는 경비를 줄이라고 합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라고 요구합니다. 마른 수건에서 짠다고 뭐가 나오겠습니까. 십중팔구 다음은 감원 계획이 나옵니다. 반어법이지만, 명예롭게 퇴직시키며 퇴직금 외에도 몇 년 치 급여를 더 주는 회사도 있는 모양인데, 제가 다녔던 회사는 대대적인 감사를 해서는 미리 찍어둔 직원들에게 퇴사를 강요했습니다. 그래도 계획한 감원 직원을 확보 못하면 부서장에게 필요 없는 직원을 보고하라고 합니다. 부서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직원 중에서 간혹 자기가 감원 대상이 될까 미리 부서장을 선제공격하기도 합니다. 회사는 부서장을 불러 퇴사를 강요하고, 부서장은 자기를 고발한 직원도 같이 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야 조용히 회사를 나가겠다고 합니다. 회사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반깁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모든 직원은 감원 태풍이 잦을 때까지 안대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봅니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옆이 보이거나, 고개를 들면 마음이 아픈 상황을 보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아픈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할 일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변진경은 기자입니다. 시사인 잡지에서 자주 본 이름입니다. 그가 포털 사이트 기자 소개란을 채우는 문구를 “세상의 모든 약한 목소리에 마음을 둡니다.”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기자의 포부가 느껴집니다. 말이 씨가 되고 입이 보살이라고 하지요. 변 기자가 취재한 대상이 ‘울고 있는 아이’가 된 것은 인과관계가 보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오래 하면 익숙해져서 감정도 무뎌진다는 말을 하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변 기자가 겪었던 일을 인용합니다.

“‘아동학대 보고서’ 관련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종종 멍해지거나 불안해졌고 한번 화가 나면 잘 가라앉지 않았다. 수면이 불규칙해졌고 주변의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어른이 아이를, 그것도 부모가 제 자녀를 학대하다가 죽이는 사건을 살펴본 뒤 글로 풀어내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취재하다가 수차례 ‘숨이 멎는’ 경험을 했다. 지면에도 차마 쓰지 못한 경악과 슬픔과 절망의 이야기들이 가슴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잘려나가는 현장을 목격하기 겁냈던 경험을 한 저는 기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책을 몇 번이나 덮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없는데, 기자의 글을 읽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듯한데, 가슴이 답답한 질환을 다시 겪을 뿐인데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무기력이 가슴속 저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변 기자도 분명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한된 효율성에 좌절도 했을 듯합니다. 그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의 답은 책의 말미에 나옵니다.

 

  “‘묻기만 하는 자’의 부끄러움에 파묻혀 있을 때 용기를 얻었다. 물어보고,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일은 분명 아이에게 힘이 될 것이다. 그걸 믿는 데에서부터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보려고 한다. 이 책이 그 시도의 일부이다.” 변 기자에게 용기를 준 것은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머리말 중에서 나온 구절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옮겨봅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누군가와 동무가 된다.” 저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 기자는 요청합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저도 아이들의 동무가 되고 싶습니다.

 

  “독자들도 함께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듣고, 울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울고 있는 아이들의 동무가 또 한 명 늘어날 것이다.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