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부키 간행. 장하준 지음 9

무주이장 2023. 6. 29. 14:29

다국적 기업의 명암, 바나나

 

 바나나는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했는데 수천 년 전부터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배 작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먹을 수 있는 부위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씨가 없는 변종이 재배되었고, 그 결과 바나나는 자연적으로 번식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재배용 바나나는 성숙한 바나나의 알줄기(땅속줄기)에서 자라난 새순(흡아)을 잘라내 꺾꽂이를 해주는인간의 개입 없이는 번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이런 방식으로 번식시킨 바나나는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래도 인간이 만든 개 품종 중 다리가 안짱다리라서 자연교배를 못한다는 이야기보다는 덜 처참합니다.

 

 19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철도, 증기선, 냉장 기술이 개발되면서 썩기 쉬운 농산물을 먼 곳까지 수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바나나는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썩기 쉬운 성질 때문에 19세기말까지도 바나나를 기르는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가까운 미국에서마저 바나나는 소량으로 팔리는 사치품이었습니다. 바나나를 미국으로 대량 수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자 미국 기업들, 특히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현재의 치키타)와 그보다 규모가 작은 경쟁자였던 스탠더드 프루트 컴퍼니(현재의 돌)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부 등지에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설립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바나나 회사들은 이 나라들의 경제를 지배하고, 정치에도 매우 높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20세기 전반부 내내 미국 해병대가 미국 기업들, 특히 바나나 회사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나라들을 침략, 점거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1928년 가을 콜롬비아에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플랜테이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미국 정부의 압력을 받은 콜롬비아 군부는 126일 파업을 강제 진압하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바나나 도시 시에나에서 많은 수의 파업 노동자들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를 바나나 학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단편 소설가 O. 헨리가 1904년에 발표한 연작소설 양배추와 왕들에서 등장하고 1950년 칠레의 시인이자 역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가 유나이티드 프루터 컴버니라는 시에서 이야기하면서 더 잘 알려진 바나나 공화국은 바로 이 나라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바나나 공화국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는 부자 나라의 힘센 기업(다국적 기업 또는 초국적 기업이라 부릅니다)들이 그들의 투자를 받는 상대 국가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국적 기업이 모두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는 편견은 갖지 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국적 기업이 진입해서 활동하는 국가의 경제에 다양한 혜택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국적 기업의 혜택을 입을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이 적절히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기 위해 많은 나라의 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며, 다국적 기업의 소유 지분을 제한해서 국내 파트너와 조인트벤처를 하도록 해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국내 기업의 협상력에 힘을 보태는 방법, 기술이전을 요구하고 로열티에 상한선을 부과하던지, 다국적 기업이 직원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에서 채용하거나, 고용한 노동자를 훈련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한국과 대만의 경우 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부연 설명합니다.

 

 엔클레이브 경제가 되면서 다국적 기업의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이라 부르는 조립 작업만 하는 방식으로는 국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다국적 기업을 저자는 바나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