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 혹은 기시감
냉전시대(1947~1991년), 한국 외교는 영어만 잘하면 되었다. 전 세계가 미국과 소련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시절이다. 남쪽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서방 진영에 속했고 북쪽은 중국과 소련 등 사회주의권에 속했다. 진영에 속하다 보니 독자적인 외교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서문, 실패한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며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일본은 군사적 동맹이 아니라면서 한미일 군사안보동맹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보수세력은 이런 정권에게 ‘짱깨주의’라며 비난을 했다. 더 이상의 사드는 배치하지 않겠다고 중국을 달래며 미국의 압력에는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등 다양한 대응으로 우리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노력에는 미국을 경시하고 중국만 중시하는 노선이라며 비판을 했다. 우리와 중국은 무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요한 무역 상대국인 중국에게 ‘탈 중국’을 얘기하는 것은 실리적이지 않았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의 국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대응했다. 우리 외교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 했다. 문재인 정권이 표방한 ‘한반도 운전자론’을 조롱했다. 한반도의 운전자는 우리 스스로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며 우리가 역사의 주체임을 부정했다.
1980년대의 냉전이 다시 돌아온 모양새다. 신 냉전시대(국민의 힘, 신원식의원은 30년 전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 오래전인데, 2022년 정권이 바뀌면서 한반도에 냉전의 기운이 드리웠다(3성 장군 출신인 신 의원은 중립외교는 시대착오라고 말한다. 군인 때를 아직 못 벗었지 싶다). 젊은이들은 만나면 예비군이 끝났는지를 묻고 있는 모양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참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20대는 신날 수도 있다. 모니터로 경험한 전투를 실전으로 치를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견착 후 발사된 총소리를 들은 자는 그런 착각하기 힘들다. 총소리에 귀가 멍해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한미일 군사동맹을 노래한다. 대통령이 G7 회의에 갈 예정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경고하는 문구를 넣은 연설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있다. 대만을 치면 우리도 좌시 않는다 거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면서, 인도. 태평양 전략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1980년대 이미 끝난 드라마가 2023년에 다시 방영된다. 너무도 많이 봤던 드라마라 대사까지 다 기억을 한다. 양코 놈에 붙어야 권세를 잡을 수 있고, 쪽발이와 친해야 잘 살 수 있고, 떼 놈은 더럽고 로스케는 믿지 못한다는 대사는 기시감이라고도 하고 데자뷔라고도 불린다. 믿을 놈은 애초부터 아무도 없었다.
이제 겨우 책의 서문을 읽고는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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