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와 안중근(587-592쪽) 2
1984년에 간행된 ‘황해도천주교회사’는 안중근 의거를 “군인으로서 전쟁 중에 전개한 정당방위”라고 정의했다. 1993년 8월 21일에는 천주교계의 교회사 연구회 주최로 ‘제100회 교회사 연구발표회 겸 안중근의사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 이은 추도미사에서 추기경 김수환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과오에 대해 연대적인 책임을 느끼며,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땅의 백성들이 자구책으로 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로, 의거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가 안중근을 ‘살인자’에서 ‘의사’로 격상시킨다는 공식 선언이었다. 동시에 안중근의 ‘평신도’ 자격이 회복되었다. 공식적으로 안중근은 ‘평신도’일뿐이었지만, 한국 천주교는 그에게 성인이나 복자에 버금가는 예우를 했다.
2000년 12월 3일, 예수 탄생 2000년의 대희년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이 문건에서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안중근 파문에 공식 사죄했다. 이 문건 발표를 계기로 각 교구의 성당들에서는 참회 미사가 열렸다. 이듬해 1월, 천주교 청주교구는 ‘안중근의사추모관’을 개관했다.
천주교계의 안중근 기념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도했다. 사제단은 매년 추모미사를 거행했으며 연극, 음악회 등 각종 기념행사를 기획. 주최했다. 사제단을 이끌었던 함세웅은 2001년 여름 안중근의사숭모회를 바판하며 별도의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켰다.
순국 100주년에는 정부 주관 추념식과 별도로 명동성당에서 추모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미사에서 정진석은 “오늘 이 추모미사는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가톨릭 신자 신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면서도, “뮈텔 대주교가 교회와 사제, 신자인 안중근 토마스 모두를 돌보는 방법을 고심해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뮈텔의 조치를 옹호한 이 발언은 천주교계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추기경 김수환이 안중근의 평신도 자격을 회복시킨 이래 한국 천주교가 견지해 왔던 ‘반성의 기조’에 역행하는 말이라는 비판이 교계 내부에서 제기되었다.
안중근 시복시성을 위한 천주교인들의 움직임은 100주년 이후에 본격화했다. 2011년 9월,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가톨릭회관에서 ‘시복시성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고, 10월에는 안중근을 포함한 551명을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 관련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계 내부에서조차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 천주교회에 안중근은 여전히 ‘자랑하기 어려운 자랑거리’다.
종교가 신자를 보호해야 하는 방법은 사랑뿐입니다. 가톨릭이 구교로 전락한 것은 신자를 밥으로, 호구로 생각하며 가렴주구로 배를 불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리는 종교가 존재하는 구성 요건 중 하나입니다. 교리가 종교인의 권력 도구가 되고, 착취 수단으로 전락하며, 권력에 아부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면 교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교리의 안정성을 주장하는 것이 종교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논리로 변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흔히 보는 일입니다. 정진석이 뮈텔을 변호하는 것에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해방된 후 우리 현대사 속에는 아직도 ‘우상 일본’이 엄연합니다. 3.1절에 일장기가 걸린 것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자유 선진국 일본, 가치 동맹국 일본’이라는 현수막이 걸릴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욱일기를 들고 부산으로 인천으로 입국하여 광화문 광장을 행진하고, 용산에 다시 일본군이 주둔하는 상상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같은 느낌적 느낌입니다. 두 눈 부릅떠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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