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교리와 순종
주교는 주변의 풍광이 낯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풍경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보좌 우편 어디 구석엔가 자기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가 있는 곳은 분명히 지옥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절차 중, 주교는 최선을 다해 교리를 지키고 교회를 발전시켰다는 생각에 천국으로 가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십계명을 지키며 산 것이 분명하였고, 더 나아가 계명을 어기는 신자들과 신부들은 가차 없이 처벌하여 교리의 엄격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신도가 늘었고, 성당은 여기저기에 늘어났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자신의 임기 중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 부장은 공장의 창고를 관리하고 있다. 사장으로부터 월말이면 재고량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질책과도 같은 질문을 들었다. 요즘 판매량이 떨어지는 추세이다 보니 사장의 질책은 정도를 더해갔다. 월말 재고량을 조절하려면 월 판매량을 제품별로 추정하고, 월말이 다가오면 주문량을 줄여야 했지만, 어떤 제품이 얼마나 판매되는 지를 따로 정확히 알고 있진 못했다. 이 부장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발주를 하기로 쉽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오늘 배송팀 김 과장이 재고가 없어 배송이 지연된다는 불평을 하는 것을 들었다. 사장이 재고를 줄이라고 하니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따로 주문을 할 테니 입고되면 배송을 하라는 말로 김 과장의 불평을 막으려고 했지만 김 과장은 반발했다. 말은 부장님이라고 하면서도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상급자인 자기를 대하는 김 과장의 태도가 불손하다고 느껴졌다. 결국은 멱살잡이가 되고 말았다. 김 과장이 표면적으로는 사과를 하고 물러났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 부장은 생각했다.
‘재고량을 줄이라는 사장의 명령에 철저했을 뿐이다.’
사장은 배송팀 김 과장과 창고관리 이 부장이 멱살잡이까지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부장을 불러 왜 재고가 부족한가를 물었다. 이 부장은 사장님이 재고량을 줄이라고 했지 않느냐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적절한 재고를 줄이라는 지시였다고 설명을 했지만, 자신의 질책에 민감한 이 부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사장님이 시키셨잖아요” 그 말만 되풀이했다. 직원을 바꾸고 싶어도 올 직원도 없고 설령 온다고 해도 새로 일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가 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부장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최근 증설한 공장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회사는 작고, 직원은 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옥으로 간 주교는 하나님에게 불평을 했다. “난 당신이 시킨 대로 다 했다. 나에게 이러는 것은 부당하다.” 하나님은 창밖을 보았다. 밖에는 따스한 햇살 속에 앉아 있는 안중근이 있었다. ‘둘을 같은 자리에 두는 것은 불공평하지.’ 하나님은 생각을 굳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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