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생각과 대한민국 헌법정신(346-351쪽) 1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핵심은 분쟁의 축을 평화의 축으로 바꾼다는 역발상에 있었으며, 이 역발상은 ‘힘’ 만능의 세계관을 극복할 때에만 가능했다. 그는 힘이 아니라 도의로만, 경쟁이 아니라 연대로만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는 신의 뜻이자 자연법칙이며, 강국들 사이의 일시적 세력균형이 곧 평화라고 주장했던 사회진화론자들과는 정반대 논지를 편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단적이며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나 일본인 검찰관 미조부치의 관점에서는 안중근이 바보나 광한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평화론은 제국주의 시대 약소민족의 보편적 염원을 담은 것이었으며, 비인도적 제국주의 자체를 공박할 수 있는 논리적, 정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생각은 제국주의 침략 논리에 포획되어 있던 한국인들에게 정신적 해방의 전망을 뚜렷이 제시했다. 안중근 의거 10년 뒤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이하 ‘선언서’로 약기)는 그의 생각을 거의 그대로 계승했다.
선언서는 독립 선언의 첫 번째 이유로 ‘인류 평등의 대의’를 들었다. 현대인들은 ‘인류 평등’을 당위이자 정언명령처럼 받아들이지만, 20세기 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사이에 우열의 차가 있다는 것이 당대의 상식이었다.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같이 태평을 누리는 것이 문명이라고 보았던 안중근의 생각은 당대 기준으로는 이단적이었다. 그는 또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평등하게 연대해야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역시 당대의 상식적 평화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소민족의 일원으로서, 약소민족을 희생시키지 않는 세계평화를 상상했던 안중근의 생각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민족과 민족, 인종과 인종,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평등이 참혹한 전쟁을 낳고, 전쟁이 인류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비로소 시대정신이 되었다. ‘선언서’가 선포한 새로운 시대정신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사조인 동시에 10년 전의 안중근 정신이었다.
선언서는 또 생존권의 박상, 심령상 발전의 장애, 민족적 존영의 훼손, 세계문화에 기여할 기회의 유실 등 한국이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된 지 10년 동안 겪은 일들과 병자수호조규 이래 일본이 양국 간 신뢰를 저버린 일들을 개략적으로 나열했다. 안중근이 ‘이토의 죄상’으로 제시한 15개 조목과 대략 같은 내용이었다. 선언서는 이어 한국 독립을 “인류통성과 시대양심이 정의의 군과 인도의 간과가 되어 호원”한다고 천명했다.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되는 한 한국의 독립을 바랄 수는 없었다. 힘으로는 일본을 물리칠 수 없었다. 민족대표들은 인류의 양심과 정의, 인도에 의지해야만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3.1 운동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 군경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정의와 인도가 끝내는 승리 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안중근도 재판정을 담판장으로 삼아 자기 의거의 정당성 여부를 인류의 양심에 묻고자 했다(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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