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앞에서는 종교는 없다
안중근의 종교는 가톨릭입니다. 영세를 받았고 그의 가톨릭 이름은 도마입니다. 그에게 영세를 주었던 빌렘 사제는 도마에게 교육에 힘쓰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중근은 이를 거부하고 상해로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한 후,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갑니다. 도마는 빌렘 신부에게 “국가 앞에서는 종교는 없다”라고 단언합니다. 그의 종교는 살인을 금합니다. 살인의 동기와 목적은 불문합니다. 그러나 중근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중근은 하얼빈으로 이동하여 이토를 하얼빈역에서 총살합니다. 동양의 평화는 힘이 세다고 해서 이웃 나라를 강점하는 평화가 아니며 동양의 여러 나라가 공존하며 발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탄환이 되어 불을 뿜습니다. 이토는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조선인들의 열복이 필요하며, 열복은 일본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열복은 문명개화의 입구이고 동양평화와 조선 독립의 기초라는 생각이 뱃속까지 가득 찼습니다. 힘이 센 일본이 만든 평화에 감화 감동하라는 말입니다. 같은 말인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 중근과 이토가 이토록 달랐습니다. 중근의 '동양평화'가 이토의 뱃속을 뚫고 휘감았습니다. 중근의 주장은 이토의 뱃속에 남았습니다. 이토는 중근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한 채 중근의 생각을 품고 죽었습니다.
명동 성당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은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간 자이다. 범죄에 대한 형량은 세속의 법정이 정하는 것이다”라며 중근을 교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교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춤추는 추상입니다. 발은 총독부를 향했고, 말은 한낱 정보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슴은 차가운 심장이 뜨거운 피를 견디지 못하고 박동을 줄였습니다. 세상에 발 딛고, 계산에 능한 심장으로 가이샤의 눈치를 살피며 살인한 신자를 냉정하게 배척하며 교회 밖의 평화를 무시했습니다. 폭력을 저주하면서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가이사의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도마에게 영세를 준 빌렘 신부는 도마에게 살인을 한 죄를 뉘우치라고 권면합니다. 도마에게 옥리들이 입회해 있으니 작은 소리로 뉘우치라고 또 권면합니다. 다 말해라, 다 말해라. 모두 다 말해라. 안중근이 몸을 앞으로 굽혔고, 신부도 몸을 앞으로 굽혔습니다. 중근은 작은 소리로 말했고, 빌렘은 침묵 속에서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습니다. 사형수의 머리와 사제의 머리는 가까워졌습니다.(273-274쪽) 도마가 한 말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제는 그렇게 신자를 인정합니다.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이 미사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였습니다.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미사의 강론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283쪽)
2000년 12월 3일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을 맞아서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안중근 현양 사업을 선도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283쪽)
국가 앞에서는 종교는 없다는 말이 왜곡되었다가 바로 펴졌습니다. (강압과 폭력에 의해 국권이 상실된) 국가 앞에서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며 굴욕을 강요하는) 종교는 없다는 말이 안중근이 한 말이었습니다. 죽은 후 일제와 부역한 그의 자식들에 의해 조롱당하고 두 번, 세 번 죽은 안중근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2023년 5월 7일 일본의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서울 한복판에서 떠들고 이 말에 고개 끄떡이며 한 마디도 못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이들의 가슴을 뚫을 총탄 소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울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안중근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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