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어떻게 비정상의 낙인을 만들어내는가.
책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문화라고 설명합니다.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비정상을 구분한다고 하지만 결코 믿을 만한 진단이 아니었다는 것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합니다. 정신과 심리를 처치하고 분석하는 의사나 심리학자도 사람이니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크게 영향을 받은 환경을 저자는 두 가지를 들어 설명합니다. 사회체제인 자본주의와 체제의 운명을 건 전쟁입니다(공산주의 체제에서 정신질환은 어쨌을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본주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삶을 권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력으로 살아남기’가 정상의 기준입니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생활하지 못하면 비정상인 노동자가 됩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합니다. 최초의 정신병원이 생긴 이유는 비정상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장치였는데 ‘애초에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시설’입니다. 스스로 일하며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병자가 됩니다. 노숙자와 장애인이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정신병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개념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든 관념입니다. 관념이 바뀌면서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람들은 이후 풀려납니다.
전쟁은 체제의 운명을 건 싸움입니다.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총을 쏠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1차 대전 중, 군인들은 주로 언어장애, 보행장애를 호소하여 전쟁수행에 지장을 주었고, 2차 대전에서는 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일반 정신장애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습니다.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비정상인들에 대한 대처가 필요했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낙인을 찍었지만, 그럼에도 전쟁 중 비록 한정된 시간 동안 불안과 우울증 같은 일반 장애가 많아지자 결과적으로 낙인이 감소되었다고 합니다.
비정상이라는 판단은 낙인효과를 가진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낙인은 낙인찍힌 자들에게서 나오지 않는 판단’입니다. ‘낙인은 그것을 찍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병을 앓거나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가혹한 도덕적 판단의 불빛을 비추고는 그 사람이 만들어 낸 그림자만을 보며 그것이 실재라고 오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그림자는 대체로 낙인의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 따라다닌다. 그림자는 떨쳐 낼 수 없는 제2의 자아처럼 그 사람의 연장된 부분이 되어, 본인조차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487쪽)(플라톤의 동굴 우화는 289쪽에 인용됨) 동굴에 갇혀 그림자만을 본 사람에게 “저게 그림자가 아니냐?”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너는 실패했다고 낙인을 찍는다는 설명입니다.
지금도 기부를 위한 이웃 돕기 방송이 있습니다. 이 방송에 대한 반응 중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본인이 무능하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방송을 통해 동정과 도움을 유발하는 행동은 파렴치하다.” 동료 직원의 말이었습니다. 오래전 얘기입니다. 1945년 ‘젊은이들’이라는 저서를 낸 우생학자 어니스트 A. 후턴은 자선단체와 보호시설이 결함을 뿌리 뽑기보다 지속시켜서 인간성을 망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습니다. (210쪽) 후턴은 이 연구결과를 자신의 우생학이라는 렌즈로 해석해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난은 사람이 못나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런 낙인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끔찍한 세상을 우리들은 통과했습니다. 빽도(빠꾸또) 하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저자는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문화와 시대에 따른 가변성을 모두 고려할 때, 정신 질환에 대한 현재의 어떤 접근법도 최선의 또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리석을 것’ (484쪽)입니다. 읽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1부와 2부 그리고 결론만 줄여 읽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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