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악몽과 몽상 1.
천하의 유명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면 그가 인간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방향이든 마음만 먹으면 달려 나가는 그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감탄만 할 뿐이다. 어느 작가나 독자에게 대단하다는 평을 듣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상상력과 인간을 이해한 그의 관찰과 분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감을 했다. 당연히 그의 작품을 찾아 읽는다. 하지만 간혹 그의 작품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야기에 귀신이나 괴물이나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 무엇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 현실감을 느끼는 것이 어려워진 경우다. 이야기가 지루해질 어떤 순간, 이야기가 막힐 순간에 나타나서는 우리의 관심을 끌고 가버리는 존재가 비현실적인 사물이고,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심리적인 불안을 상징하는 어떤 존재가 ‘쥐’ 라거나 ‘고양이’라면 사람의 욕망 때문에 뒤틀린 비극적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만,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어떤 것을 불쑥 들이밀며 ‘믿음’을 유도하는 이야기에는 공감이 어려워졌다.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한 그의 입장이 있었다.
“내가 엄청난 것과 시시한 것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 맨 처음 알아차린 것도, 그 둘의 공존이 삶의 일상적인 측면과 어쩌다 한 번씩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동시에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를 통해서였다.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믿음’이고 믿음은 신화의 요람이다. 리얼리티는 어쩔 거냐고? 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리얼리티 같은 건 우주 밖으로 꺼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작품 안에서 리얼리티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리얼리티와 상상력의 관계는 물푸레나무 말뚝과 흡혈귀의 관계와 비슷하다. 나는 신화와 상상력이 사실상 호환이 가능한 개념이고 믿음이 그들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12쪽)
소설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생명은 재미있어야 한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만큼 재미있다. 그러나 두 번째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는 반감된다. 세 번째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항상 새롭다. 그중 처음 듣는 이야기는 나의 혼을 빼놓는다. 간혹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었던 적이 있었다면 그의 이야기가 가진 상상력이 나의 예상에 부응하여 작품 속의 이야기를 예측할 수 있었을 때이거나, 그가 잠깐 잊어버려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며 기시감을 가지게 할 때 그랬던 모양이다. 그의 이야기는 신화와 상상력의 호환성을 믿는 믿음에 터 잡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번 작품집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 몇몇 이야기는 무엇 때문일까? 그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훌륭한 글은, 훌륭한 단편소설은 상상의 뇌관을 때리는 공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상의 목적은 견딜 수 없는 상황과 삶의 항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위안과 안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무서운 상상을 하느라 밤잠을 설쳤을지 몰라도 어른이 돼서는 그 덕분에 미쳐 날뛰는 삭막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만약 그 상상력으로 빚어진 작품을 읽고 나와 똑같은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만족할 것이다. 이건 거금을 받고 영화 판권을 넘기거나 수백만 달러짜리 출간 계약을 맺는 걸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내가 재미를 못 본 이야기는 나의 상상의 뇌관이 조금 이상한 곳에 위치하여 작가가 던진 공이 비켜 맞았던 모양이다. 이 말이 맞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그의 이야기에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만 아쉬움이 나의 뇌리에 남았으니 말이다. 작가는 우주 밖으로 꺼져도 된다고 생각하며, 리얼리티를 옹호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재미있는 그의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이 세상 어디쯤에는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라서 리얼리티를 약에 쓰려고 하면 찾지 못할 개똥처럼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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