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인데 역사 기록에 가깝다.
저는 회고록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인의 회고록은 더욱 그렇습니다. 말하기 좋아하고, 생색내는 것이 직업병인 그들의 말에 신뢰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해찬의 회고록을 읽었던 것은 그가 하는 말에서 객관화된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20년 집권론을 얘기하는 것에는 그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하얀 거짓말을 능글맞게 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행동에서는 사익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책임감도 보였습니다. 그의 회고록을 펼친 이유입니다.
책의 말미에 붙은 유시민 작가가 쓴 발문,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나의 느낌이 엉터리가 아닌 것을 확인했습니다. “책의 형식은 ‘회고록’인데 내용은 ‘역사 기록’에 가깝다”는 문장이 근거입니다. 최민희 씨와 대담형식으로 기록된 회고록에서는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담담히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에는 온갖 감상이 샘솟듯 올라와 가슴속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마치 자기는 하나도 웃기지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얘기를 하는 중에도 청중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회고에 무엇 그리 즐겁고 신나고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저 기차를 타고 가며 바뀌는 풍경을 보듯 지난 역사를 소환하였습니다.
그에게 공감을 하면서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결여된 자질이 생각났습니다. ‘퍼블릭 마인드’라는 것입니다. 공무를 하는 정치인, 공무원이라면 자신의 이익(사익)이 아니라 공익이 우선이라는 그의 철학이 그의 인생을 이끈 주동력이라는 것에 관심이 갔고,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퍼블릭 마인드의 실천에 애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를 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과 정치인의 그것이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정치인도 사람이니 자기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변명에 길들여진 세월이 유구합니다. 국회의원은 자기의 당선이 주목적이므로 합당한 당론이나, 국민의 권리보호의무에서도 선거를 위해서는 유보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조하는 그저 그런 평론가의 말에 쉽게 넘어간 세월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때가 탔습니다.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말을 이해찬은 합니다. 현실이 비록 거부하더라도 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조금씩 또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패배 의식 없이 얘기합니다. 이해찬이 마음에 새긴 명제가 있다고 합니다.
“사회사상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마음에 새긴 명제가 있어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173쪽) 그가 사회사상사를 왜 공부했을까요? 그의 말을 다시 인용합니다. “1988년 국회에 들어온 이래, 민주주의의 완성과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목표로 33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은 온전한 공인이어여 한다는 것입니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려면 공인의식(Public Mind)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올바른 공인의식을 가지려면 역사와 현실을 함께 사고하는 사회과학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전개 과정인 통시적 흐름을 읽고 우리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공시적 구조를 파악하며 현재 이 나라에 사는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항상 의식하는 세 가지가 바로 사회과학적인 안목의 기반입니다.”(8쪽) 이해찬의 가치는 여기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이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진 굴레같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찾았던 방법을 시행하면서 끝내 지치지 않았던 것은 ‘가치’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고, 현실을 인정했기에 실패도 인정하고 주저앉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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