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이 병상에서 딸인 선자에게, 아들 노아를 잃고 상심한 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니가 그 남자를 노아의 아버지가 되게 해서 그 애를 부끄럽게 했데이. 니 고생은 니가 자초한 기다. 그 불쌍한 아이 노아는 나쁜 씨를 물려받았다. 이삭이랑 혼인했으니 니가 운이 좋았데이. 억수로 좋은 사람이었다 아이가. 모자수는 더 좋은 핏줄을 받았다. 그래서 일이 아주 잘되는 기다.”(266쪽) 양진의 말을 들은 선자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선자는 아들이 나쁜 씨를 물려받았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화와 열이 너무 많은 핏줄이라고 말했다. 씨, 핏줄. 이런 한심한 생각에 어떻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노아는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적대적인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노아의 죽음은 그런 잔인한 이상을 믿게 내버려 둔 선자의 잘못일 지도 몰랐다.’(269쪽)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나라를 떠나 일본에 살 때, 그들의 주거 환경은 얼기설기 엮은 집에, 돼지를 키우면서 같이 지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몸에서 냄새가 나고 지저분했다고 합니다. 살면서 얼마나 각박했겠습니까? 일본인들에게 부조리를 항의할 방법이 없었던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인의 평은 더럽고 냄새난다는 것 외에도 화와 열이 많은 핏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일본땅에 살던 한국인들 가슴속은 배설하지 못한 화로 인하여 늘 용광로처럼 끓는 가슴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민족의 핏줄이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굴레를 벗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가졌던 생존의 도구였을 것입니다.
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후 일본 정부의 대처방법과 이를 수용하는 일본 국민들을 보면서 “일본 민족은 권력에 비굴하여 강한 자에게는 굴욕적인 수용을 습관적으로 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정신이 없는 미개한 핏줄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원전에서 같은 사고가 났을 경우, ‘냄새나고 더러우며 화와 열이 많은’ 우리 국민은 정부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생각해보면서 일본인들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선입견을 가진 것입니다. 그 후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는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교활한 핏줄’을 연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교활한 민족에게 한없이 협조하는 위정자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화와 열이 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인들은 “봐라, 맞잖아?”라는 반응을 보이겠지요? 하지만 양쪽 모두가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릴 적 씻기를 싫어한 아이라고 저를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아파트로 이사하고 알았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수돗물,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매일 자주 씻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자주 씻으면 몸에 기름기가 없어진다고 걱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포유류 동물입니다. 저는 요즘은 다시 잘 씻지 않습니다. 늘 갈아입을 옷이 있으니 옷의 도움을 받을 경우가 많아져서 그렇습니다. 글의 끝이 지저분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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