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 영상에서 차량사고 영상이 올라옵니다. 몇 편을 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짐작해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좋아하는 영상도 아니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영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보기에 불편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가해자가 올리는 영상이 아니라 자칭 피해자들이 올리는 영상입니다.
나. 자칭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다. 지나친 권리의식으로 타인을 정죄하는 모습에 동조하기가 어렵습니다.
라. 방어운전보다는 공격적인 운전으로 보입니다.
사고는 주로 제 차선을 달리던 차가 끼어드는 차량과 충돌하는 영상이 많습니다. 끼어드는 차량이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주장인데, 사실 차선을 바꾸는 차는 백미러로는 주행차량을 확인할 각도가 아닙니다. 고개를 돌려 진입하려는 차선을 확인하여야 하지만 운전이 미숙한 사람들이나 힐끗 돌아보는 시선으로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차량을 보지 못하거나 그 차의 속도가 빨라 금방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방어운전은 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운전이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으니 누구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예측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운전조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속을 하지 않으면 추돌을 피할 수 있거나, 최소한 끼어들 조짐이 느껴지면(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서행으로 조심을 하는 것이 방어운전인 것입니다. 저 운전자가 잘못했으니 나는 사고가 나도 잘못이 0%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인정을 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운전자라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럽니다. 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글에 방어운전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은 김지승이 쓴 짐승일기에서 믿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사샤의 보들보들 몽실몽실한 노루궁뎅이버섯 같은 발을 만지면 고양이는 “싫어” 하는 것처럼 발을 쏙 빼면서 사샤가 “넌 내가 거절하고 거부한다고 내게 해롭게 굴 존재는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그 믿음이 문제다. 그게 나를 울고 싶게 한다. 노루궁뎅이버섯 같은 마음이 된다. 사납게 가시 돋친 마음이, 한쪽은 절벽이 된 마음이 자꾸 보송보송해진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전적이거나 통합적인 것으로 여겼던 내게 사샤는 믿음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면면을 일깨운다. 그래서 우리 사이의 믿음은 딱딱하지 않고 보송보송하다.”라고 고백합니다.(59~60쪽)
자기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난 합법적인 운전을 하고 있어!)으로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믿음(저 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할 수도 있지 않나?)을 거부하고 무조건 자기의 믿음이 지켜져야 한다는 완전성을 추구하는 운전자는 사샤의 발을 만지다가 사샤가 발을 쓰윽 거두면 무어라 반응을 할까 걱정됩니다. 공격성을 보이는 운전자가 실수를 하는 운전자보다는 훨씬 위험해 보입니다. 자신의 권리만,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작가는 사람의 믿음이 전적이거나 통합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양이는 믿음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고 말랑말랑하게 말합니다. 이런 생각이 없는 대통령이나 직업병을 가진 검사들이 특히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조폭의 연장이 검사들의 법과 구분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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