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TV에서 파친코를 봤습니다. 그리고 책을 찾았는데… 이미 품절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책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있어 반환일자를 맞추느라 파친코는 아침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1편 읽기를 끝냈습니다.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의 고단한 삶을 힘들게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소설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결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식민지의 비참함을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읽었고, 작가의 정돈된 서술이 아픔을 가중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감정적이지 않은 글인데 마음은 무거워 슬픔이 돌덩이 같습니다.
선자의 남편 이삭이 죽음 일보 직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감옥에서 죽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일본 당국이 이삭을 풀어준 것이지요. 같이 수감되었던 늙은 목사와 교회 잡일을 보던 후는 이삭이 출감 전날 죽었습니다. 선자가 이삭의 몸을 확인한 내용입니다.
“신발을 벗기고 구멍 난 양말을 벗겼다. 살갗이 갈라지고 벗겨진 발바닥이 마른 피딱지로 뒤덮여 있었다. 왼발 새끼발가락이 검게 변해 있었다.” (286쪽)
“양쪽 어깨와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몸통에 우툴두툴한 흉터들이 대각선으로 돋아서 마름모꼴 모양이 마구잡이로 생겨있었다. 이삭이 기침을 할 때마다 목이 붉어졌다.” (293쪽)
“대야물을 여러 번 갈아가며 향이 강한 비누로 씻겼는데도 이삭의 몸에서 시큼한 악취가 풍겼다. 서캐가 머리카락과 수염에 붙어 있었다.” (294쪽)
조국이 없어 함부로 고문당해도 되는 타국인, 열등한 민족이라고 함부로 걷어차도 보호받을 수 없는 이방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고 감금당하고, 고문당하는 이삭을 구해줄 나라는 없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이 뼈에 사무칩니다.
일제 강점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나라가 있습니다. 정권에 따라 차별을 받기도 하고, 대접을 조금 받기도 합니다. 잊힌 듯하면 독재 정권이 기어나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제 강점기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일본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의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으로부터(전범기업) 이미 피해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 피해자들은 일본의 배상을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정부가 어제 이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안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은 빠진, 사과는 없는, 돈으로만 해결하자는 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일본과의 외교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이라고 언론들은 덧칠하고 마사지를 하지만, 정부에게 우리 국민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토착왜구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국이 광복되고 벌써 70년이 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이 사라져도 한참 전이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픔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이지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은 애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 다른 생을 살기 위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애도는 금지되고 거부되고 있습니다. 애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를 프로이트는 멜랑꼴리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애도 받지 못하는 국민, 애도하지 못하는 정부, 우리는 정녕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광복이 되고 독립이 되었는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우리의 현실이 허약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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