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서울편 2. 유홍준 지음, 창비 간행 1.

무주이장 2023. 1. 11. 14:01

역사는 반복된다

 

 서울편 1을 읽은 후 창덕궁과 창경궁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이 5대 궁궐이었다는 설명에 깜짝 놀라 경복궁과 덕수궁만 다녀온 것을 알고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찾아 을지로에서부터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궁궐 담(사실은 종묘의 담이었습니다)을 따라 걷다 결국 다시 인사동 초입 맞은 편의 창경궁 홍화문을 확인하고는 늘 지나가며 보던 곳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을지로에서 곧장 직선으로 오지 못하고, 종묘 쪽으로 가서는 뱅글뱅글 돌아오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 그것도 곧장 재방송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잊을 만하면 다시 재생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는 오늘에 재생되는 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니 빙빙 돌아 한참을 헤매다 온 것이지요. 역사 공부는 오늘을 살기 위한 방편이라고 믿습니다.

 

 서울편 2는 한양도성을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북악산이 개방되어 요즘은 서울성곽길 걷기에 재미가 더합니다. 이런 재미가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설명에 우리가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에 웃었습니다. ‘순성(巡城)’이라고 서울 사람들은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하고 봄가을로 꽃과 단품을 음미했다는데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풀어쓰면 성곽 순례쯤 됩니다. 서울에 도로가 나고, 전차가 들어서면서 허문 성곽이 작지도 않지만, 남북 대치 상황에서 출입이 통제된 성곽 구간도 있어 잊힌 놀이였는데, ‘성곽길 걷기유래가 예부터 있었다는 설명에 반복된 놀이, 반복된 역사를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유 선생의 서울성곽 설명을 조금 더 해보자면, 서울성곽은 전란을 대비해 쌓은 성곽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라는 겁니다. 집에 담장이 있고, 읍에 읍성이 있듯이 수도 서울에 두른 도성이랍니다. 영어로 말해서 포트리스(fortress)가 아니라 시티 월(city wall)이라는 겁니다. 동대문을 옹성처럼 두른 것은 전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풍수상 허하다는 서울의 동쪽 지세를 보완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수원성의 옹성(월성)과 다른 용도라는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럼 왜 울타리, 담장, 한양도성을 쌓았을까요?

 

 유 선생은 태조 이성계가 무학(無學)대사에게 이 자리가 도읍지로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가 전제로 내세운 첫마디는 도성을 쌓으면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고려시대까지 평범한 고을이던 한양과 조선왕조가 수도로 건설한 한양의 차이는 도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고 합니다. 제가 놀란 것은 무학대사의 무학이 배움이 없다는 뜻의 한자였고, 배운 것도 없는 대사에게 태조가 도읍지를 물은 역사가 오늘에 다시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승이라고 불렀던 천공과 함께 생활하며 곁에 있었던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갑자기 생각난 것입니다.

 천공은 일자무식이다. 한글을 모른다. 내가 그에게 글을 읽어주고, 글을 써줬다.’는 요지의 증언입니다. ‘무학의 천공이 이름을 달리 한 채, 2022년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라고 천기를 알려준 것(일반국민들의 짐작이지요)이 역사의 반복으로 보였습니다. 무학대사는 글을 알았을까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무학대사의 자칭 일자무식과 천공의 타칭 일자무식이 겹쳐지면서 청와대 이전과 한양도성 축성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불현듯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코믹하고 허탈하게 반복이 되는 걸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태조 이성계와 겹쳐지는 것이 비슷해서일까요? 대비가 되어서 그럴까요?

 

최근 윤 대통령이 했다는 말(거버먼트 잉게이지먼트가 레규레인션이다)을 닮아서 저도 세련된 표현을 써봅니다. “히스토리는 리바이벌되는 것이 룰이라는 생각에 코믹해서 멜랑꼴리 합니다.” 영어가 다시 품격을 찾아가는 우리 사회에 국어학자, 국문학자의 한글사랑은 어디로 숨었습니까? 말도 통하지 않을 시정잡배와 같아 보여 말을 삼가시는 것입니까? 도끼를 두고 상소를 올린 유림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