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열림원 간행 1.

무주이장 2023. 1. 3. 14:36

 

 아빠, 굿나잇!” 딸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아빠, 책상에 머리를 조아린 채 정신 빠진 아빠에게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굿나잇, 민아.”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새가 지저귀는 듯한 딸의 예쁜 모습을 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아빠가 뒤돌아보기를 기대했을 딸을, 안아주기를 바랐을 딸을, 굿나잇 키스를 해주길 원한 딸을, 새 잠옷을 보고는 예쁘구나.” 얘기해주길 머뭇거리며 기다렸던 딸에게 아버지는 뒷모습만 보여주고 맙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원했던 아빠의 사랑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이지 아빠는 저를 사랑했습니다.” 딸은 어느 인터뷰에서 아빠를 두둔했습니다만, 딸이 생각한 아빠의 사랑과는 달리 아빠는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를 사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고, 피아노를 사고, 좋은 승용차를 타고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사랑이라고 못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압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을. 그러면서 갈망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삼십 초면 족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이면 된다. 그런데 그 삼십 초의 순간이 너에게는 삼십 년, 아니 어쩌면 일생의 모든 날이었을 수도 있었는데도… 만일 지금 나에게 그 삼십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딱 한 번이라도 좋다.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딸이 아빠는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다라고 저를 이해한 듯 말을 하지만, 그것은 책임감이었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압니다. 사랑과 책임감은 전혀 다른 감정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딸에게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딸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딸을 사랑하지 않고 책임을 져야할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딸이 저에게 불평을 하면 저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져 딸이 미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봐도 제가 딸을 사랑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랑을 표현할 삼십 초의 시간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80의 아버지와 60의 아버지가 같은 길에서 만났습니다. 아마도 30대의 아버지도, 40대와 50대의 다른 아버지도 겸연쩍게 같은 길에서 만나서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마시고, 삼십 초의 기적, 사랑의 기적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남 걱정할 일이 아니면서 오지랖이 넓었습니다.

 

 지원아 재원아 내 딸로 태어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한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