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고통으로부터
선생의 글 제목입니다. 심한 입덧을 경험한 아내를 보면서 시간과 함께 변한 자신의 소감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사랑도 기쁨도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산모의 고통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먹지 못하고 화장실의 변기에 머리를 박고 먹은 것도 없는 위장을 계속 비우는 고통의 끝에 예쁜 아기가 태어나면 그동안 겪은 고통을 잊을 정도로 사랑이 넘친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런 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 심한 입덧을 겪은 임부가 둘째의 임신을 거부하는 것을 목격하기는 했습니다. 선생의 감성이 아주 민감하여 아내의 입덧을 자신 또한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저는 선생의 이야기에서 억지스러움을 봅니다. 사실 입덧 만으로 당시 선생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요? 스스로도 젊은 아빠였던 선생은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고 책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22쪽)
선생은 여든이 넘어서야 입덧과 산고의 고통을 겨우 알게 되고, 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허둥지둥 초 자를 뗀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선생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요즘 가사를 분담하고, 육아를 분담하는 젊은 아버지들이 퇴근 후 낮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본 엄마를 대신해서 연장근무를 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서 아이 사랑 보육 연장근무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는 한 번 조사해볼 만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장근무의 노고를 불평하는 젊은 아빠를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사랑과 기쁨이 반드시 고통으로부터 출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가 거북합니다. 마치 고통이 사랑과 기쁨의 전제조건이란 것이 불편하고 현실감이 없는 논리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내와의 사랑과 기쁨은 부부관계의 고통이 전제되어야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기쁨이 그들 간의 고통이 조건화된다면 도대체 그 사랑과 기쁨을 갈망하고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리는 원하지 않는 고통을 만나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마침내 고통을 이겨낸 후 정신을 차려 사랑과 기쁨을 확인합니다. 현실은 오히려 정신없이 행복하거나 사랑과 기쁨에 겨워하다가 난데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쇠망치에 맞아 눈에서 큰 별이 번쩍이고 아픔이 눈물에 줄줄 흘러내리는 고통을 만나는 것이 경험칙에 맞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을 잊고 있다가 만나는 것이지요. 물론 고통과 사랑, 고통과 기쁨이 대비되는 논리의 선명성이 솔깃해지기는 합니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로 마땅치 않습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서 고통을 무수한 상처와 함께 통과한 뒤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과 기쁨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선생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저도 딸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된 것은 큰 고통과 맞닥뜨린 후였습니다.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딸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모른 채 살기를 조심하라는 겁니다. 사랑하다가 닥치는 고통을 만나는 것도 눈에서 별이 튀어 눈앞이 보이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인데, 멋 모르고 살다 고통을 만나 뒤늦게 사랑과 기쁨을 찾는 것은 후회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존재의 부재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입니다.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같지만 다른 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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