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사회평론 간행 5.

무주이장 2022. 12. 30. 12:30

모사를 넘어서

 

 딸이 연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딸이 한 번씩 자기 연기를 찍은 동영상을 올린 것을 숨어서 봅니다만, 아직까지 오디션에서 왜 떨어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연기가 서투릅니다. 아이가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 연기자들의 연기를 분석하고, 심리를 분석하는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해가 그리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모사를 하는 수준이지요. 타고난 자질을 가진 연기의 천재가 없지는 않겠지만 제 아이는 그런 천재성을 가지지는 않았나 봅니다. 사실 아빠와 엄마가 자질이 없는데, 아이가 난데없이 선천적인 자질을 가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아빠의 욕심일 것입니다.

 

 저자는 동서양의 회화사에서 핍진한 묘사력을 과시한 그림을 소개합니다. 솔거가 그린 노송도와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인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인 벨기에 성 바프 대성당의 제단화’, 당나라 멸망 후 송나라가 세워지기까지 기간인 오대 시기에 활동한 서희의 설죽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에 대한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오랜만에 들은 이름입니다. 그의 책 칼 마르크스를 대학 시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에 따르면 예술이 현실을 모사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플랑드르 회화는 원래 존재할 필요가 없는 복제물을 세상에 하나 더 더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 실물처럼 그림을 잘 그렸으니 대단하지 않냐고? 진짜가 있는데 뭐 하러 구태여 진짜와 비슷한 것을 그리나? 비판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리란 말인가요? 소식(호는 동파입니다. 소동파 아시죠?)에 따르면, 탄력 있는 마음을 가지고 외부 대상을 창의적으로 소화한 다음에 비로소 그린 그림이야말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네가 춤을 만들고 출 때는 음악과 안무를 조화시키고, 춤을 추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도록 수준을 맞추어 작품을 만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연기도 너에게 주어진 역할이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며 어떻게 연기하면 진부하지 않을 것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마음속에서 확신이 갈 때 비로소 연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할 말을 정리해 봅니다.

 

이분의 글을 읽는 것이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어디 쓸 데도 없는 글을 읽는 허무를 느끼면서도 사는 법을 요령부득이지만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