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모르는 게 있으면 알아야 하는 사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분. 이어령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집요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생각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에 저는 동의합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로 기억하는데, “사람이 사는 의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스님이 하는 답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없어요. 그냥 사는 것이지.”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누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때문이라고 구라를 풀기도 했고, 철학이 사람의 삶을 나름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미와 아비가 만나 만든 자식의 삶이라는 것이 어미와 아비가 당초 깊은 뜻을 품었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듯이 갓 태어난 조막만 한 아이가 무슨 뜻을 가졌겠습니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일 뿐이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태어난 의미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생각을 하며 살고는 싶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가진 아내의 입덧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선생의 글은 모성애를 비판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아기를 낳고 가슴에 품어보지 못한 탓인지 아주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어. 모성애의 그 아름다운 신화를 만들어낸 것은 남성들의 음흉한 계략이라고 말이야. 여성들을 가정에 묶어두고 아기를 기르는 중노동을 미화하여 규방에 가두어두려는 남성 이기주의, 우월주의, 편의주의… 온갖 악담을 퍼부었지. 하지만 말이야, 그 여류 철학자가 아기를 품에 안아봤다면 그녀가 철학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그 아기가 가르쳐주었을 거야.” (43쪽)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딸을 아내가 낳고 아비가 기른 행복을 얘기하다가 아이 낳고 기르지 못한 철학자를 비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자도 그 반대의 경우도, 한 편의 긍정과 다른 편의 부정을 하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있을진데 단칼에 부정하며 비판하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인간의 약점 때문일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선생이라고 다를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글이 가면서 선생의 약점은 더 커집니다.
“도리어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똑똑한 여성은 늘어만 가는구나. 결혼 기피와 저출산, 그것도 한국이 세계에서 으뜸이라니 무슨 낯으로 너에게 굿나잇 키스를 보내겠니.” (46쪽)
사랑이 지나치니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 결혼 기피와 저출산을 조장하는 여성의 똑똑함을 지적합니다. 모성애를 비판한 여류 철학자의 똑똑함이 헛똑똑이듯, 오늘 한국의 젊은이도 모성애를 모르는 헛똑똑이란 말이지요. 사랑은 편향입니다. 이거 아마도 질병일 것입니다. 노년의 사랑은 이래서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선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딸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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