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왕. 정보라 소설집. 아작 간행
2.
우리나라 화물차에는 디지털화물기록계(DTG=Digital Tacho Graph)를 차에 설치하도록 의무화되어있다고 합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법을 살릴 데이터는 많다는 말입니다. 교통사고 사망사고의 65%가량이 화물차에 의해 발생한다는 소식은 너무 자주 들었습니다. 애꿎은 운전자들이 화물차 등의 운송기사들에 의해 죽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화를 내고 안타까워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들을 여유가 없고 보도되는 자료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화물기사들 중에서 하루 8시간을 쉬는 날이 한 달에 일주일 정도라도 있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들은 과적 요구와 긴 상하차 대기시간, 상차 시간은 늘어져도 화물 도착 시간은 팽팽하게 독촉받는 비정상적 환경이 만든 과로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 상시적으로 빠져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요구가 파업으로 인하여 겨우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과로 원인을 해소하여 도로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기사들을 공격합니다. 이들의 요구를 미리 조져놓지 않으면 북한이 핵위협을 하듯 떼를 쓰는 상황이 계속된다고 대통령은 말합니다. 장관은 이번 파업을 이태원 참사에 비교합니다.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는 사업주가 운전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편을 갈랐습니다. 법은 유려한 문구를 이용하여 문법이 맞는 법규정을 마련하였으나 이미 죽었습니다.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금지는 강요하면서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대로 둡니다. ‘법과 원칙’은 우리가 아는 ‘법과 원칙’과 다르고 비준한 조약의 ‘법과 원칙’과도 다릅니다. 이런 그들만의 떼법을 정부가 강요합니다.
전태일의 잃어버린 연대기는 오늘 화물노조의 연대기에 고스란히 살아납니다. 재미난 이야기꾼은 이런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비슷하지만 세부 사항을 바꿔서 통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로 바꿔서 언제쯤 들려줄 수 있을까요?(건설노조가 화물노조파업에 동조파업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세상에서 이야기는 결코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왕이 여자가 아닐 이유가 없듯이 여자가 장군이 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잔다르크는 중국에서 뮬란이 되어 나타나고 우리나라라고 없지는 않았을 텐데 무지하여 그 이름을 들은 것이 기억에 없습니다(작가님~ 이야기로 들려주세요~) 비가 오지 않아 먹을 것이 없어 유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희망이 되어 유랑자들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야기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요. 용이 탑에 가둔 공주의 이야기는 잠든 공주에게 입을 맞추는 왕자와 만나는 것이 우리가 외고 있는 명시의 댓 구 마냥 새롭지도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갑자기 입을 맞추려는 기사에게 칼을 겨누는 공주로 바뀝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주가 적의를 표하는 것은 비상식이지요. 공주는 한때 기사를 알고 있었다고 사설을 답니다. 사랑의 약속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했다지요. 그런데 이 놈이 그만 왕비랑 붙은 것입니다. 그러니 공주가 칼을 뽑았겠지요. 그럼 기사는 사정이 없었느냐? 없으면 리얼리티가 부족하지요?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어요? 왕비가 마녀라서 그녀의 마법에 그만 걸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해를 풀고 공주와 기사는 잘 살았느냐? 그러면 재미가 없지요. 이야기는 계속 세부 사항을 바꿔 풀어가는데 어디 화장실이라도 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까부터 오줌보는 터질 듯 팽팽합니다만 꼼짝 않고 이야기에 자실려 있습니다. 푹 빠졌습니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싶으시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이야기꾼이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문학이 어떠니 저떻니 하면서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뭡니까? 이야기꾼 아니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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