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종 사건(백악기-제3기 멸종을 중심으로)
지층이 화석 기록에 따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는 세 개의 시대로 구분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고생대 말기에 일어난 페름기 대멸종으로 지구상에서는 당시 생물종의 95퍼센트가 사라졌습니다. 이 대멸종으로 인해 트라이아스기에는 그 전과는 대단히 다른 해저생물이 나타났고, 판이하게 다른 모습의 중생대 동물상이 형성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대와 신생대도 백악기-제3기 멸종이라는 두 번째 대멸종으로 경계가 나뉩니다. 이 사건을 줄여서 K/T라고 부릅니다. K는 백악을 뜻하는 독일어 크라이데(Kreide)에서 따온 것입니다. T는 제3기를 의미합니다.
K/T는 공룡이 멸종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공룡 멸종에 초점을 맞춘 주장들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대멸종은 지구 전체에 걸쳐 먹이사슬의 위아래에 있는 생물들이 모두 사라진 사건입니다. 따라서 먹이사슬의 토대(바다의 플랑크톤, 육상식물)가 붕괴된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공룡 같은 동물에 일어난 일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곧바로 공룡에만 초점을 맞춘 설명은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게 됩니다. 백악기의 멸종은 지구 전체적으로 벌어졌던 현상이고, 공룡의 멸종은 큰 그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이유로 대멸종이 일어났는지 그 주장을 보겠습니다.
첫째, 6,500만 년 전에 우주공간에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면서 공룡 시대가 갑자기 종말을 맞았다는 가장 대중적인 설명입니다. 이것을 충돌가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칙술루브라는 지역에 깊이 15-20킬로미터, 지름 170킬로미터가 넘는 크레이터를 남긴 운석이 지구에 충돌했다는 가설입니다. 충돌의 충격으로 거대한 지진해일이 일어나고, 충돌 지점에서는 운석 자체로 인해 100세제곱킬로미터의 암석 파편이 100킬로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대부분은 곧바로 떨어졌지만 미세한 먼지 같은 일부 파편은 몇 달 동안 공기 중에 머물러 지구를 핵겨울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당시의 지구는 기온이 어는점 근처까지 떨어지고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아 육지와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식물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충돌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산성비가 내리면서 더 많은 식물과 대부분의 육상동물이 죽었다는 것이지요.
1978년 이탈리아 아펜니노 중부에 위치한 구비오 인근의 두터운 석회암층을 조사하던 버클리 대학의 지질학자 월터 앨베르즈(Walter Alvarez)가 백악기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진흙층 표본을 채취하고, 핵화학자인 프랭크 아사로(Frank Asaro)와 헬렌 미셀(Helen Michel)이 이 표본에서 희귀한 백금족 원소인 이리듐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분석했고, 엘버레즈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Luis Alvarez)는 이 이리듐을 외계 유입의 증거로 제시하고 1980년에 소행성-충돌 시나리오를 내놓았습니다.
둘째, 인도 서부와 파키스탄 남부에 걸쳐 뻗어 있는 데칸 고원에서 일어났던 화산활동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1980년 루이스 앨버러즈의 주장을 의심했던 과학자들은 이리듐의 첫 발견 이후 2, 3년 안에 이리듐은 전세계 해양뿐 아니라, 해양의 화학적 농축 과정이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983년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또 다른 사건을 찾아낸 것이 바로 화산활동이었습니다. 화산활동으로 대규모의 용암 분출이 일어나면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대기 중으로 쏟아져 충돌가설에서 예측한 것과 거의 비슷한 핵겨울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 전지구적 사건이 있습니다. 백악기 말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져 그 결과 해안선이 물러나면서 해양생물의 주 서식지였던 대륙붕이 대부분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의 상대적 중요성을 밝히는 최선의 방법 역시 화석기록 자체에서 나온 직접적인 증거를 살피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생물은 무엇이고,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은 생물은 무엇일까? 멸종은 점진적으로 일어났을까(용암 분출이나 해수면 하강이 주요인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니면 갑자기 일어났을까(충돌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화석 분포를 살펴서 생물들이 백악기 말기에 갑자기 사라졌는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사라졌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화석기록은 지구상에 살던 모든 생명체의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화석이 될 확률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1펴센트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상에 살았던 종의 약99퍼센트는 한 번도 화석화된 적이 없습니다. 결국 지층에 나타난 화석의 밀도로 점진적인 멸종인지 파국적인 멸종인지를 평가하고자 할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과연 공룡은 멸종했을까요? 1960년대부터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고생물학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공룡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 생물은 멸종했는지 몰라도 공룡의 후손은 현존하고 있으며, 그 후손이 바로 조류라는 것입니다. 만약 조류가 공룡이라면 공룡은 멸종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룡이 잽싸고 영리한 조류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이후 70년 동안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조류와 공룡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공통된 해부학적 특성들은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1970년대가 되자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이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조류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더 많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꽤 많은 육식 공룡의 화석에서 쇄골(부서지기 쉬워 보존되는 일이 드물다고 합니다)이 발견되면서, 조류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쥐라기와 백악기의 조류 표본 수백 점도 새로 발견됩니다. 발견된 화석에서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의 날개는 보온을 위해 활용되었다. 그러다 땅에서, 그다음에는 비탈을 올라가는 추진수단이 되었고, 그 후에는 짧은 거리를 활강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재 전력비행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2005년 시점에는, 조류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점에 대해 척추동물 고생물학자들 사이에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어쨌든 공룡은 백악기의 종말과 함께 멸종된 게 아닙니다.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룡’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를 ‘비조류(새를 제외한) 공룡’이라고 부르겠다고 합니다. 공룡은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식탁 위에 있는 치킨도 공룡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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