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평화 사이, 히브리인의 딜레마(책의 1부 4장의 제목임)
농경 국가의 폭력성을 비판한 구약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원죄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니라 농업 경제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단 한 번의 불복종 행위 때문에 야훼는 그들 두 사람에게 힘겨운 농업 노동이라는 무기형을 선고했고(창세기 3:17-18절 참조) 아담은 땅의 주인으로서 평화롭게 땅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땅의 노예가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아담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죠. 둘 다 충실하게 야훼에게 제물을 바치지만 야훼는 약간 심술궂게 카인의 제물은 거부하고 아벨의 제물만 받아들였지요. 카인은 당황하고 격분하여 동생을 가족의 땅으로 꾀어내 죽입니다. 야훼는 카인을 벌합니다. 카인은 추방자이자 도망자로서 에덴 동쪽 놋 땅을 배회하게 됩니다. 히브리 성경은 처음부터 농경 국가의 핵심에 자리 잡은 폭력을 비난합니다.
성경의 첫 다섯 책인 모세 오경은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이르러서야 최종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모세 오경에서는 한 민족을 세우기 위해 우주가 아니라 지상의 제국들과 싸웁니다. 더욱이 야훼는 농업 문명에 비타협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바빌론에 대한 비판입니다. 바빌론 통치자는 세계 정복이라는 환상에 취해 인류 전체가 공통의 언어를 쓰는 단일 국가에서 살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지구라트가 하늘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믿었지요. 야훼는 이런 제국적 오만에 분노하여 정치 구조 전체를 ‘혼란’(바벨)으로 밀어 넣었지요. 이 사건 직후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이 시기에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국가로 꼽히던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야훼는 세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도시 생활의 계층화된 압제를 버리고 목자 생활의 자유와 평등을 얻으라고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결함이 있었습니다. 야훼가 이 족장들을 위해 선정한 땅이 계속 그들을 받아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인의 딜레마였습니다. 모세 오경을 정치 철학으로 읽으면 상황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으로 밀려날 운명이었기 때문에 강한 국가들 앞에서 늘 약한 지위에 놓이게 됩니다. 문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문명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족장들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결함을 지녔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비교하면 나은 사람입니다. 이 통치자들은 신민의 부인을 빼앗고 우물을 훔치고 딸을 강간하고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습니다. 왕들은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소유를 징발하지만 아브라함은 늘 소유권을 철저하게 존중합니다. 심지어 약탈하는 네 왕을 습격했을 때도 납치를 당한 조카 롯을 구출했을 뿐 전리품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창세기 14:21-24절 참조)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 세 명에게 보여준 친절과 환대는 그들이 문명화된 소돔에서 경험한 폭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파괴할 계획이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그 도시를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통치자들과는 달리 그는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나온 가장 초기 자료에서는 이때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나중에 기원전 7세기 개혁가들이 이야기에 집어넣은 것인데, 히브리 성경의 가장 폭력적인 구절 일부도 그들이 집어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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