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정호영 옮김. 훗 간행 4.

무주이장 2022. 9. 16. 10:15

바울 다시 읽기저자의 충고

 바울의 사후 그의 운명은 종종 이런 식이었습니다.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저자들은 바울의 평등주의와 제국의 압제에 대항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을 버려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사목 서간들은 바울의 것으로 부당하게 알려진 여성 혐오를 기독교에 도입했습니다. 바울을 라틴어 번역으로 읽은 데에 근거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교리는, 루터의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이신칭의, 이신득의)의 특징적인 도그마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사상에서는 상당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임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던 바울에게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바울을 유명 인사로 만든 것,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유대교와 히브리 성경에 대한 의심을 기독교 상상력에 도입한 것은 마르키온과 영지주의였습니다.

 

 바울은 그가 설교한 적이 없는 개념들로 비난을 받아 왔고, 교회는 영적인 삶에 관한 그의 높은 통찰 일부를 무시하였습니다. 바울이 열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은 번영 복음(헌금과 헌신에 비례해서 영적,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는 신앙)을 설교하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가려졌습니다.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인종적, 문화적 편견들을 근절하려던 바울의 결의, 거짓된 특혜와 우월감 위에서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자랑들에 대한 바울의 거부, 그리고 신앙을 방종으로 만드는 제멋대로의 영성에 대한 바울의 마음속 깊은 불신은 기독교 사고방식의 일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서구에서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황제 노릇을 하는 교황들을 보았다면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바울은 약한 자들을 고압적인 신념으로 위협하는 강한 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독단적인 신앙인들이 이러한 바울의 경고를 완전히 가리고 있습니다. 어떤 미덕도 그 안에 사랑이 스며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일상적이고 실질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사랑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통찰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245~259)

 

 259쪽을 끝으로 책은 끝이 납니다. 바울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과 함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많은 거짓 믿음들이 어떤 시대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뒤틀리고 훼손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달라짐이 없지만, 그래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바울을 기억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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