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야고보서, 2장.
유명하다고, 돈이 많다고, 영향력이 있다고, 선거를 도와준다고, 목사가 설교단(강대상=講臺床 참 어려운 한자말이죠?)이 있는 무대로 신도를 불러 응원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경우가 있는 모양입니다. 교회 내의 지위나 직책과는 상관없고 단지 유력한 신자이면 더욱 그런 모양입니다. 과거 이명박이 다니던 사랑교회에는 그와의 인연을 맺기 위하여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이 되었겠지요. 목사님이 그러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신자가 있습니다.” 자랑을 하는 게지요.
절이 있는 산을 가면 차량을 통제한다는 문구가 보통 있습니다. 스님들이 수행 중인 곳이니 당연히 그렇겠지 생각하고 길을 가는 중에 고급 승용차들이 무시로 통행을 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때론 주지스님이나 다른 스님들이 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살이나 처사로 보이는 불교신자가 타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절에 영향력이 있는 불자겠지요. 건강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절마당에서 그들을 보면 대부분 건강한 외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출입증을 나눠준 결과이겠지요. 이것 역시 자랑과 현실의 이익이 자리한 이유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특히 교회당에서 빈부를 기준으로 자리를 배정하지 말라고 예시까지 들고 있습니다. 차별이 합리화되고 계급이 사회체제를 지탱하는 신분제 사회로 가지는 않나 염려가 될 정도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차별이 제도화되는 사회가 되어갑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삼갈 일이지만, 믿는 사람들의 경우는 비난의 정도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보다 훨씬 신랄할 것입니다. 나의 권리가 아닌 나만의 권리는 특권입니다. 특권을 가지면 기분이 좋아지긴 하겠지만, 그것이 몸에 배면 이웃을 사랑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도 믿음이 있다면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행동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며 믿음만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의 믿음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옳은 것이고 그를 믿는 것이니 행동하는 것도 옳은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도 행동이 다른 이유는 우리의 믿음에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것이 기준이 되어서 그럴 테지요. 조심할 일입니다. 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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