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글에 감정을 싣는 것은 글에서 자주 사용한 부사나 형용사의 거북함과 비슷하다.
강준만이 글을 쓴 목적은 책의 맺는말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정치 전쟁’을 푸는 방법은 건성으로 수긍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화이부동)이라는 주장, 양비론을 비판하기보다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 위해 애쓰는 기자를 졸지에 ‘기레기’로 만들지 말자는 의견, 확신은 가능성을 외면하고 실제 세상과 단절시키는 잔인한 사고방식이라는 미국 심리학자 엘렌 랭어의 말을 인용한 것이나, 결론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도 각자의 이념과 정치적 성향에 충실하기보다는 ‘두 개로 쪼개진 나라’의 분열 간극을 좁히는 일에 앞장서 주면 좋겠다는 권면, 그리고 그런 언론을 가리켜 ‘기레기’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좋겠다는 희망을 거론한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 하나 틀린 말이 없습니다. 앞선 인용에 대하여 영국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을 인용하며 확신을 자제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고 부연하면서 자신의 희망이 결코 쉽지는 않다는 현실인식까지 가졌으니 더욱 강준만의 글은 틀릴 게 없습니다.
그의 맺음말을 이룬 문장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없습니다. 형용사와 부사는 꾸밈말인데,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용례가 조금 다릅니다. 정말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거나, 조금도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죄악을 범하지 말라거나 할 때처럼 가치판단을 하는 것으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문장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합니다. 양비론은 두 가치를 동시에 비판할 때, 두 진영을 동시에 비판할 때 사용합니다. 양비론에 감정을 실으면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이 됩니다. ‘중도적인 입장으로 양측을 모두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실이 더 큰 쪽을 유리하게 만들어준다’는 위키백과에 나오는 양비론 비판을 인용한 문장처럼 말입니다. 강준만의 비판글 중 이런 부분이 있어서 몇 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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