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후배랑 같이 부산 금강원 동물원을 갔습니다. 그 시절 그래도 금강원 동물원이 제법 유명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물개 우리가 있고, 하루에 몇 번 먹이를 주는 조련사에 의해 쇼를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후배와 같이 핫도그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지나가다 들른 곳이 원숭이 우리였습니다. 사람이 오면 울타리 쪽으로 다가와 먹이를 원하는 것이 눈망울에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먹다 반쯤 남은 핫도그를 손잡이 쪽으로 건넸습니다. 원숭이의 손이 핫도그의 손잡이를 잡을 때, 손아귀가 막대기를 빈틈없이 쥐고, 당기는 힘의 절실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원숭이의 손은 사람의 손과 다름없었습니다. 핫도그를 쥐는 원숭이의 손과 후배의 손을 잡고 싶은 나의 손은 똑같이 갈망의 도구였습니다.
철호에게 강간을 당하고 강물에 뛰어든 연옥이는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고 연옥의 아버지는 주장합니다. 연옥이를 건져 올린 119 수상구조대원이 상부에 올린 구조출동일지의 사본을 보면, 구조대원이 보트에서 뛰어내려 물속으로 들어가서 연옥의 머리채를 움켜잡았고, 연옥을 등에 업고 물 위로 올라와 보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등에 눌린 연옥의 가슴에는 온기가 있었고, 연옥은 오른팔로 대원의 목을 끌어안고 왼손으로 대원의 겨드랑 밑을 움켜쥐고 있었답니다. 여자의 아귀힘은 강했고 대원이 연옥의 움켜쥔 손을 폈을 때, 손금에 물이 고여 있었고 손가락은 무언가를 자꾸만 잡으려고 버둥거렸다는 것입니다. 연옥의 아버지는 조사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시오, 손으로 잡으려 했다니까 자살이 아니지 않소. 손으로 말이오.” 연옥의 아버지는 형사에게 말합니다.
연옥의 손은 비록 죽으려고 강물 속으로 투신하였지만 마지막 순간 삶의 갈망을 표현한 게지요. 아버지는 그걸 구조출동일지의 사본을 읽고는 금방 알아챕니다. 연옥이가 살려고 손으로 잡으려 한 것은 삶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철호는 군에 입대 후 사건이 발견되어 군사 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육군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철호의 어머니는 참고인으로 경찰의 소환을 받고 경찰서로 들어가면서 화장실에서 들뜬 화장을 고칩니다. 아이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이제 들어야만 하는 것이 두려워서지요. 이혼 후 전 남편이 데리고 있던 열 살짜리 아이가 아버지 곁을 떠나 서울의 어머니를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이가 겪은 긴 여정보다 아이의 침묵을 더 견디지 못합니다. 아이가 목적지로 정해 찾아온 자신을 그 전에도 그랬듯 막막해합니다. 아이에게 보내던 양육비를 끊은 것, 중학교 때 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가려 할 때, 아이가 가출하여 피신한 것,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오토바이 폭주 사고를 내고, 여자 아이를 강간하고 육군에 입대할 때까지 비록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무기력했습니다. 사건 후 그녀는 집을 줄여 이사를 하면서 철호가 만기 출소해서 나타나더라도 철호에게 내줄 방은 없다고 하고 사진도 모두 버렸다면서 경찰서를 다녀온 후에는 헤어진다거나 돌이킨다는 것이 모두 발음만 있고 실체가 없는 말의 껍데기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경찰서를 방문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화장실에서 손으로 로션을 바르고 콤팩트를 누른 거지요. 손은 두려움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만난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11월이 되어서야 철호의 어머니는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말이 되어질 수 없는 말이라도 무슨 말이든지 우선 던지고 싶어서 연옥의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경찰이 알려줘 찾아간 사찰에는 ‘지장전 신축 공사 중’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철호의 어머니는 차 안에서 화장을 고칩니다. 아마도 형사를 만나기 전처럼 무서워서 머뭇거리느라고 그랬을 것이라고 스스로 짐작하면서 손은 콤팩트를 꺼내서 두 볼과 눈 밑을 누르고 립스틱을 새로 바릅니다. 어머니의 손이 구원의 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연옥의 아버지가 대패를 쥔 손으로 갑니다. ‘그의 대패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무의 무늬들이 피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분명 손은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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