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극
독일군 조사원 : 동료 빨치산들을 모두 불어라.
지하공작원 : ‘울지도 말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굴자. 놈들에게 붙잡히면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뭔지 이제야 알겠네. 눈물은 안 나오지만 무서워.’
독일군 조사원 : 파시스트 매니큐어를 당해봐야 하겠구만. 손을 탁자 위에 올려!
지하공작원 : (열 손가락 모두에 작은 기계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10개의 바늘이 손톱 밑을 쑤시고 들어온다. 몸서리쳐질 만큼 끔찍한 그 고통에 정신을 잃어버린다.)
독일군 조사원 : 지독한 년. 다른 걸 가져와.
지하공작원 : (평균대 같은 곳, 그 사이에 묶여 눕혀진 채 기계가 돌기 시작한다. 바드득바드득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는다.)
독일군 조사원 : 이것도 안 되겠구먼. 전기의자로 옮겨.
지하공작원 : 전기고문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기를 몇 번을 한 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발가벗기더니 한 놈이 다가와 내 가슴을 덥석 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놈의 얼굴에 침을 뱉어 주는 것 밖에… 그 덕분에 전기고문이 끝이 없었다.
그녀는 교수형을 언도받았다. 1944년 2월 13일에 파시스트 감옥, 영국 해협 해안에 위치한 크루아제트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그해 파리코뮨 기념일에 프랑스인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프랑스에서 ‘무공십자훈장’을 받았다. 민스크에 돌아왔는데, 같이 지하단체에서 활동했던 남편이 내무인민위원회에 붙잡혀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하공작원 : 내 남편은 반역자가 아닙니다. 나와 같이 지하활동을 했던 용맹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내 남편이 반역자일리가 없어요. 나는 남편을 믿어요. 남편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라고요.
소련 예심판사 : 조용히 하시오. 프랑스의 창녀 주제에! 입 다물어!
(독일군 점령 치하에 살고, 포로로 붙잡히고, 독일로 끌려가 파시스트 수용소에 수감됐던 남편의 이력이 모두 의심을 받은 것이었다.)
소련 예심판사 : 그러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나? 왜 전사하지 않았나?
지하공작원 : 심지어 죽은 사람들조차 의심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망자들마저, 우리가 적과 싸웠고 승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승리했어. 그건 민중이 쟁취한 승리였어! 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민중을 믿지 않았어. 그게 우리에게 주는 고국의 보답이었어. 우리의 사랑과 우리가 흘린 피에 대한 보답.
파시스트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있으면서 놈들에게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그곳에서 백발이 되었는데, 1945년에 다시 내무인민위원회에 붙잡혀 있으면서 완전히 불구가 되었다. (갈아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놈들)
등장인물
지하공작원 : 류드밀라 미하일로브나 카셰치키나
지하공작원의 남편 : 성명 미상
독일군 조사원 : 루드비히 파시스트
소련 예심판사 : 알렉산더 조지프스키 도라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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