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7권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양정무 저, 사회평론 간행 2

무주이장 2022. 6. 6. 10:31

라이벌이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라이벌 관계가 우리들이 공존하고 발전하는 데 동력이 되는지 아니면 서로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욕망의 연료가 되는지를 보려는 의도입니다. 라파엘로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 라파엘로는 교황이 가장 자주 쓰는 서재 겸 알현실인 서명의 방에 그림을 그립니다. 교황은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방인 엘리오도르의 방에도 그림을 그리라고 명합니다. 율리오 2세 다음으로 즉위한 교황인 레오 10세도 나머지 2개의 방에 그림을 그리게 하여 결국은 교황 집무실의 방 4개 모두에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이 작업은 4면의 벽과 천장까지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이 4개의 방에 있는 프레스코와의 크기를 합치면 300평 규모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그보다 작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책은 서명의 방그림을 소개합니다.

 

 서명의 방은 폭 8미터 * 10미터의 방입니다. 이중 10미터쪽의 벽에는 아테네 학당(철학)’성체에 대한 논쟁(신학)’ 그리고 8미터쪽의 벽에는 페르나소스(문학)’법학과 세 덕성(법학)’을 내용으로 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턱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서재 겸 알현실에 그려진 그림으로는 조금 주제와 소재가 이상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성경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배당의 천장이니만큼 당연한 귀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그리면서도, 주변부에 성경에 나오지 않는 무녀들의 존재를 담았지만, 이 무녀들은 그리스 델포이나 리비아 신전의 사제들로 손에 종이 두루마리나 책을 들고 있는데, 이 무녀들은 유대교 예언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지합니다. 결국 무녀라고 해서 완전히 성경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은 교회와 어울리는 그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라파엘로의 그림은 성체에 대한 논쟁(신학)’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색채가 없습니다. ‘이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법학까지 가톨릭 교회가 전부 아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구성으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표방한다고 할 수 있다고 양 교수님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은 계속 이어집니다.

 

 아테네 학당의 그림 속에는 총 5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그리스 철학자들입니다. 그림 속 좌우 상단의 큼직한 조각은 아폴론 신과 아테네 신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해보자면 이들은 이교도 철학자이자 이교도의 신이잖아요. 이들이 그림 속에 존재한 것은 아마도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도 담겼을 겁니다. 한마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교황의 취향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도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을 이교도로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 역시 기독교의 영광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본다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신학의 세계관 아래 철학도 수용할 수 있다는 교황청, 다시 말해 당시 가톨릭 교회의 자신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인문주의적 취향을 가진 교황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당시 로마 교황청이 인문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이 독실한 신앙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학문적 성과가 신학적인 결론으로 귀결한다고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철학과 문학 그리고 법학이라는 당시 지식을 보는 교회의 시각은 여유가 있습니다. 교회 어디에도 신학이외의 지식의 싹을 잘라버릴 서슬 퍼런 살기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포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라이벌은 발전의 동력인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하이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르네상스 초기에는 고대 로마의 문화유산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부활시키려 했죠. 그런데 이제는 이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아예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도전적인 자세로 바뀝니다. 다시 말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르네상스를 꿈꿨다는 겁니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하이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만약 르네상스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고대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리오 2세의 취향이라고 서명의 방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그림의 의미를 축소하지만 않는다면 진취적이고 포용적인 당시의 가톨릭 교회와 인문주의자들, 즉 르네상스 시대의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스24의 서가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