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 동력인가, 제거의 대상인가, 라이벌이란?
바티칸 박물관의 정문 위에는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가 2명의 조각상이 있습니다(비록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책을 통한 방문도 방문인지라 확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망치를 든 조각가 미켈란젤로와 팔레트를 든 화가 라파엘로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을 줄이고 또 줄이면 결국 이 두 작가가 남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이미 경력이 인정된 인물이지만, 라파엘로는 그에 비해 경력이 일천한 화가였습니다. 라파엘로의 등장은 아마도 교황청 전속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의 추천이 있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미켈란젤로가 1475년생이고, 라파엘로는 1483년생,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와 다비드 상으로 명성을 얻은 후 30살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교황 율리오 2세의 부름을 받았던 것에 비해, 라파엘로는 불과 25세의 신예 작가로서 교황 집무실의 벽에 그림을 그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율리오 2세의 지시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시작한 때가 1508년 여름이고,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집무실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같은 해 겨울부터랍니다. 둘은 치열한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었습니다. 신이 내린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서 배운 융합형 천재인 라파엘로를 거의 같은 시기에 고용하여 바티칸에 세기의 명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율리오 2세의 노련한 조직 경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대결 구도는 결국 율리오 2세의 용인술을 바탕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라이벌을 인정하고 그들을 이용하여 세기의 명작을 만든 사람인 율리오 2세는 신의 세계를 대표하는 교회와 인문주의자가 발전시킨 다른 학문세계를 라이벌로 인정하고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에 살던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합니다. 루터는 면벌부(저자는 면죄부 대신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를 포함해 교회의 부패를 95개 항목으로 일일이 따져가며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95개조 반박문’이라고도 부르지요.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됩니다. 종교개혁으로 신교와 구교는 라이벌이 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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