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를 읽는 오후’ 중 두 시인의 시를 보며 든 생각 하나.
선거가 끝난 후, 아직도 뉴스를 보기가 싫습니다. 최선의 인간들은 신념을 모두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떠들어대는 믿기 어려운 말들이 싫어서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민감한 국민입니다. 독재권력이 휘두르는 방망이에 매 찜질을 당하고 입을 봉했던 내 젊음의 거짓된 나날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서슬 퍼런 권력이 백주 대낮, 햇빛 속에서 잎과 꽃들을 마구 흔들었지만; 구부러지더라도 부러지지 않아 이제 나는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권력의 하수인의 꾐에 빠져 그대가 우리 깊게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에 다른 이들이 내 친구가 되었으나; 그래도 내가 죽음에 직면할 때나, 잠의 꼭대기에 기어오를 때, 혹은 술을 마셔 흥분했을 때, 나는 문득 그대의 얼굴을 만나ㅂ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짙은 글자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구절입니다.)
도로시 파커는 최영미 시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시 ‘베테랑’에서 도로시 파커는 말합니다.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그렇게 세상과 싸웠지만, 이제 늙어,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이 현명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지- 이기든 지든 별 차이가 없단다. 얘야.” 그녀의 시어에 얼마나 공감했게요. 젊은 내 모습과 늙은 내 모습을 언제부터 봐왔는지 정확하게 지적을 하니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무력증이 진행되어 나를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그걸 철학이라 말하지.’ 바로 부끄러워 수풀 속에 숨고 싶었습니다. 아직 “이게 철학이야. 늙어가는 사람의 지혜지.”라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단지 그 말을 하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젊고 대담하고 강했을 때, 내가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와라, 개**들아, 싸우자!”고 소리치고, 나는 울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싸우기만 했지 효능감이 없는 세월과 맞서 젊음을 소비한 억울함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다: 선과 악이 미친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어 앉아서 나는 말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사람이 현명해.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지- 이기든 지든 별 차이가 없단다. 얘야.” 세월의 무게를 견딘 지혜라고 오해했습니다. 우리 모두 너무나 자주 듣고 읽은 글들입니다. 체념과 무력감을 가지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비슷한 말은 ‘국민은 개. 돼지다.’ ‘일본을 배워라.’ 등이 있습니다. 이때 도로시 파커가 하는 말이 귀를 뚫고 가슴을 뚫고 하늘을 다시 보게 합니다.
무력증이 진행되어 나를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그걸 철학이라 말하지.
거짓에 속지 말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무력하게 갉아 먹히지 말고, 싸우라는 응원입니다.
두 시인의 시에 감탄하다 그만 넋두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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