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시를 읽는 오후, 최영미 지음, 해냄 출판

무주이장 2022. 5. 2. 14:06

시를 읽는 오후, 최영미 지음, 해냄 출판

 

 인간을 파괴시키려거든 예술을 파괴시켜라.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주고, 뛰어난 것을 천하게 하라.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장이랍니다. 글을 써서 먹고살기를 희망하던 시인은 블레이크의 통찰에는 공감하면서도 문단의 아웃사이더인 본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마음에 금이 간 사람들은 긁어댔던 사람들과는 달리 상처가 쉽게 낫지 않습니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못 잔다는 옛 속담은 들었을 당시에는 그럴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때린 놈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백 번을 양보해서 어쩌면 옛날에는 사람들의 양심이 살아있어 혹여 때리고는 후회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돈 주고 때리고, 때리면서 신고하라고 하고, 때리고는 안 때렸다고 주장하는 꼴을 보면 분명히 맞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최영미 시인이 소개했던 저 글을 보면서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주고, 뛰어난 것을 무시한 목격담이 기억났습니다.

목격담 1,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팀이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신인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는데, 출연한 신인가수()를 소개하고 출연자들을 전문가들이 비평하는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야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와 춤이 어떤지 무얼 알겠습니까만은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신기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놀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 어떻다느니, 발전 가능성이 없다느니 깎아내리는 평 일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목격담 2. 박진영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 임원의 아드님이었는데, 아들이 가수로 데뷔하니 유심히 봐주십사 소개를 하던 그분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의 얼굴도 보통의 우리들과는 다르게 선이 굵은 얼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박진영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던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다른 방송국의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지만 출연했더니 역시 전문가들의 비평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박진영의 얼굴이 가수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평이 있어 프로그램을 보던 저도 비평의 저급함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비평가들은 예로부터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 자신들이 보고 배운 틀에 맞지 않은 작품에 인색한 데다, 인간이기에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어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매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면서 살롱에서 거부당한 마네와 세잔의 그림에 쏟아진 평단의 조롱을 생각해 보라. 인상파의 눈부신 승리 이후 미술 비평은 권위를 잃었지만, 문학에서는 여전히,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비평의 권세가 막강할 것이다고 실망을 표하고 있습니다. 시인이야 워낙 다구리를 당한 경험이 있어 솥뚜껑만 봐도 놀란 마음이겠지만, 그리고 그런 시인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예단은 금물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태지와 아이들은 최고의 성공을 했습니다. 박진영은 JYP로 불리며 역시 성공하였습니다. 이들을 평가했던 전문가들이 우리의 대중가요계에 어떤 공헌을 해서 발전을 시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워낙 이쪽 계통엔 정보가 없으니까요? 혹시 BTS를 발굴하고 키운 사람들이 그때 그 사람들이라면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만, 설마 그랬을까요. 우리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여러분들은 몇 분이나 기억하십니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신문 쪼가리나 방송 쪼가리에서 그때그때 소비했던 전문가들이나 있었지 정말 기억나고 사랑하는 전문가들이 어디 그리 흔합디까? 그들은 모두 소비되고 없어졌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이라고 뭐 다를까요. 같은 나와바리에서 도토리 키재기 하며 허울뿐인 명성으로 남의 다리 더듬고, 술 얻어먹고, 뽐내던 시절은 이젠 노골적으로 보기 힘들 것입니다. 뒷골목 대장 꼴이 보기 싫으면 큰길로 나오면 그뿐입니다. 시장은 큰 길이 더 큽니다.

 

 시인은 블레이크의 문장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모든 정직한 사람은 다 예언자이다. 그는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적인 일에서나 자기 의견을 서슴없이 말한다.

이 말에 토를 단 시인은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시원 통쾌하게 살다간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매장되기 쉽다고 냉소합니다. 시인의 냉소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외교부의 공식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외교부 장관 공관에 개를 끌고 찾아와 집 구경을 할 테니 집을 비워 달라고 말했다는 사람이 있다며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은가 봅니다. 제 귀에도 들리니까요. 시인의 냉소에는 같은 편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없어 홀로 외롭게 싸웠던 아픈 기억이 느껴집니다. 이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그래서 우리 앞에서 열심히 싸웠던 사람이 외롭고 아프도록 만들지 말자고 말해봅니다.

 

이 연사 목소리 높여 뜨겁게 외칩니다!” 이건 웃자고 한 말입니다.

예스24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