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우리가 평등을 얘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2.

무주이장 2022. 4. 27. 14:45

우리가 평등을 얘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2.

 

 아리스타르코스가 우리에게 남겨 준 위대한 유산은 지구와 지구인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구와 지구인이 자연에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위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보편성으로 확장됐고 옆으로는 인종 차별의 철폐로까지 이어졌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위대한 유산은 별들의 영역 너머로까지 그 적용범위가 확장됐다. 18세기 말,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궁정 음악가이자 천문학자였던 윌리엄 허셜은 별들의 분포를 지도로 작성했다. 허셜이 작성한 별들의 지도에는, 은하수의 띠가 흐르는 평면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비슷한 수의 별들이 늘어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지구가 은하수 은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미주리 주 출신 할로 섀플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구상 성단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새로이 고안해 냈다. 구상 성단에서 특정한 패턴으로 밝기가 변화하는 별을 찾아내고 그 변광 주기에서 그 별의 원래 밝기를 추정한 다음 겉보기 밝기와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그 별까지의, 즉 구상 성단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밝기를 알고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정도로부터 나와 그 가로등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서 별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그 결과는?

1915년 섀플리는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이 아니라 은하의 외진 변방에 있다.”라는 참으로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허셜의 오류는 궁수자리 방향에 있는 많은 양의 미세 고체 입자들 때문이었다. 성간 티끌이라 불리는 이 고체 입자들이 별빛을 아주 효과적으로 흡수. 산란하기 때문에, 허셜은 성간 티끌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별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핵으로부터 약 3만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은하수 은하의 중심 지역에는 구상 성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별들이 많다. 은하의 중심핵에서는 육안으로도 밝은 별들을 100만 개 이상이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수는 고작 수천 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한 곳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태양, 아니 태양들이 뜨고 지는 것을 계속 보겠지만, 태양들이 진다고 해서 깜깜한 밤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면 우리의 위상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태양이 속해 있는 은하라는 것도 뭐 그리 대단한 존재도 못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주의 후미진 구석을 차지하고 겨우 십여 개의 구성원을 거느린, 작은 은하군의 그저 그렇고 그런 식구일뿐이다. 그런데 그 우주에는 지구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의 은하들이 널려 있다.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한 발짝 한 발짝 무대의 중심에서 멀어질 때마다 강등당하는 인류의 지위를 한탄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방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 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의 이야기는 과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생각이 얼마나 오만불손하고 우주 질서와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오니아에서 시작된 과학과 탐구 실험의 정신이 사라진 것은 실용적 가치를 얕잡아 보는 풍조가 만연 하면서였다. 기능인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과 천시 때문에 전도가 유망하던 이오니아의 실험 중심적인 방법론은 그 후 2,000년 동안이나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실험에 의존하지 않고는 발전을 할 수 없다. 실험에 대한 혐오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테네인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대범한 생각들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해당됐지, 구성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육체노동에 있었다. 육체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했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노동이었다. 노예 소유자들은 당연히 육체노동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과학을 할 만큼의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일부 사회에서 체면치레로 ‘gentle-men’이라 불러 주는 바로 노예주들뿐이었다. 그러니 과연 누가 과학을 했겠는가? 거의 아무도 과학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슷한 경향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는 과학정신 쇄락의 원인이라고 네이선 시번이 찾아냈다. 중국의 경우가 그랬고, 현대 (정치적) 3세계의 커다란 문제도 그렇다.  고등 교육의 기회가 주로 부유층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유층 출신은 당연히 현상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하여 무엇을 만든다던가, 또는 기존의 지식 체계에 도전하던가 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나라들에서 과학이 뿌리내리기는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 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이었다. 그들은 노예 제도의 부당성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지를 폈으며, 전제 독재 군주를 섬겼고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다.(노예 사회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다.) 그들은 또 사상과 물질을 별개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들은 하늘에서 지구를 분리시켰다. 이것이 서양의 정신세계를 2,000년 이상 지배해 온 분리의 사상이다.

 

 전체 우주의 변두리 후미진 구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단지 십여 개의 구성원을 거느린 작은 은하군, 그 작은 은하군의 또 다른 후미진 구석에 위치한 은하의 변두리에 위치한 볼품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을 변두리 촌놈들이 특별한 듯 노예와 귀족을 구분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주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차별하는 것에 어찌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무력감을 느낀다. 우리가 지구인으로서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얘기하는 이유는 우주적 관점에서 너무나 명징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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