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이상문학상 우수작 서이제,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내가 힙합을 어찌 알겠는가? 기꺼해야 리듬이라고 해봤자 44조의 시조, 판소리 그리고 불경을 따라 했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들을 수 없었던 벽을 때리는 비트 소리를 상상하고, 일일이 사전을 찾아야만 했던 가수들의 이름, 그 가수조차 여자인지 남자인지, 혼자인지, 떼창을 하는 그룹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었던 리듬을 흉내 내며 글을 속으로 소리 내어 노래하니 어~~ 이게 되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쾌함 비슷한 즐거움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처음에는 이것이었다.
‘마하 반야 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명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 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대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이 경의 뜻은 인터넷 검색을 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읽으시면서 리듬을 타시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다음 떠오른 것은 춘향전이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눈결에 얼핏 보니, 삼삼이를 덮고 있는 것이 맹랑하고 야릇하다. (중략)
“생리대를 풀고 과거 시험장에 있는 과녁[12]처럼 잠깐 일어서려무나.”[13]
“그건 곤란합니다. 그만하고 주무시지요.”
“이렇게 부탁하는데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춘향이 어쩔수 없이 반쯤 일어섰다 다시 앉았는데, 몽룡이 정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겹겹이 둘러 싸인 푸른 산속, 늙은 중이 송이죽을 자시다가 혀를 데인 형상이요, 홍모란(紅牧丹)이 반개하여 피어오는 형상이라. 영계[14]찜을 즐기시나 닭의 볏이 거기 왜 있는가? 먹물이 흐른 줄과 도끼자국이 일치하는 구나.[15]
이도령의 움직임좀 보소. 몸이 점점 달아오르니, 훨훨 벗어 제끼고 모두 벗고 이부자리로 뛰어드는데, 춘향이 하는 말이,
"저 보고는 일어서라더니 당신은 왜 안일어납니까?"
이도령이 눈결에 일어서서 앉아있자 춘향이 묻는 말이
“검은색을 띠면서,[16] 송이버섯의 머리 같은 것이 무엇시오?”
“그것도 모르느냐. 동해 바다에서 대합(大蛤) 조개 일쑤 잘 까먹는 소라 고둥이라 하는 것이라.”
에후리쳐 덥썩 안고 두 몸이 한 몸 되었구나. 네 몸이 내 몸이요, 네 살이 내 살이라. 호탕하고 무르녹아 여산폭포(廬山瀑布)에 돌 구르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점가(批點歌)[17]로 화답한다.’ (춘향전 도남문고본)
(농염한 성적묘사는 무시하고 역시 리듬을 타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불경의 리듬 뒤에 젊은 남녀의 춤이라니, 불경스럽긴 하다)
이제 서이제의 글을 옮기면서 그 흥을 이어보자. 힙합처럼…
‘말을 뱉는다고 모두 말이 되는 건 아니란 말이야, 하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은 건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앞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 너무나도 많지만, 할 말은 일단 두고. 쿵 쾅쾅. 트랩에 취한, 옆집 놈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펜을 잡는데. 그 순간 바로, 첫 문장이 “머리 위에 띵 하고 떠올랐지 전구같이.” 쿵 쾅쾅’ (219쪽)
이 부분만 리듬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리듬을 타고 읽고 싶은 분은 서 작가의 글을 다 읽어보시면 되겠다.
나는 힙합의 리듬이나 랩의 가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의 소설이 리듬을 타고 입에서 절로 흥얼거리며 읽는 즐거움은 처음 느꼈고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런 즐거움을 얻으려 나의 초라한 아파트 앞집이나 위나 아래나 밤낮없이 '쿵 쾅쾅' 대는 친구를 갖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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