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손보미, 불장난

무주이장 2022. 2. 24. 14:38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손보미 작가, 불장난

 

 202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왔다. 우수작과 대상작 7편 중 남자 작가가 쓴 작품은 한 편뿐이다. 여성파워가 느껴진다. 올해의 대상은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다.

 

 아버지는 길을 가다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10살의 아이 손을 잡고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아이의 눈을 커다란 손으로 가렸다. 티브이 드라마에서의 애정표현 장면이 나오면 역시 아버지는 아이의 눈을 가렸다. 아버지는 그런세계에 접근 금지 딱지를 붙인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그 딱지를 붙였고 아이는 신체 전부가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 입이 아니라 엿듣는 귀 말이다.

 

 봄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아이의 어머니는 이제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엄마는 너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구나. 사과를 받고 싶다면 네 아빠에게 받으렴.” 하지만 단호한 태도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곧바로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영원히 너의 엄마야.” 아이가 열두 살이었던 여름에, 일 년 동안 외국의 대학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공항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영원히 너의 엄마야

아버지는 아이에게 너희 엄마는 야망이 있는 여자였어.” 이혼 직후,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번갈아 지내던 아이는 원하는 책을 사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서점까지 가서는 망설였다. 아이는 어머니를 설득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서 든 의문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나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여자 아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게 여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상처의 정체였다고 이제 고백한다.

 

 방학이 되면 어머니의 집으로 살러 가던 아이가 갈 데가 없어져 방학임에도 아버지의 집에서 지낼 때, 아버지와 같이 사는 그녀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이랬다.

나는 너보다 훨씬 더 실망했어. 정말이야.” 여자는 아버지와 결혼한 여자를 그녀라고 부른다.

 

 말을 할 수 없는 갑갑함,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어수선함, 아이들과 어울려 런웨이를 걷지 못하는 소심함의 근원을 알고 싶어 온 몸을 귀로 바꾸는 상상을 하는 아이는 혼자 불장난을 하는 쾌감에 빠진다. 눈을 가릴 필요도 없고, 장소를 옮겨 다닐 필요도 없이 옥상에서 불장난을 했다. 원하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들키지 않으면 되고, 가지고 있던 라이터에 연료가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불장난을 글로 썼다. 그러나 그 글은 거짓이었다. 아이는 그 글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리라는 기대 때문에 안도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글이 돌아와 다시 아이의 손에 쥐어지고 교실 아이들 앞에서 다시 읽어야 했을 때, 그녀는 한때의 굴욕을 손쉬운 안도와 거짓으로 무마하고자 했던 시도에 대한 형벌로 이해했다.

 

 그리고 아이는 진심의 글을 첨가하여 낭독을 한다. 성의 없고 산만한 아이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이번에야 말로 마음껏 의기양양해지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관계였다. 그녀와 재혼한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도 아이의 삶에 항구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것이 영원성을 가진 것으로 오해했다. 그 오해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여정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늘 우매했다. 한 박자 늦게 알았던 사실과 진실들을 나이 든 지금에서야 한 움큼씩 둘러볼 지혜도 안목도 생겼다.

 

 읽는 내내 우울함이 들었다. 이혼을 담담하게 말하는 주인공은 벌써 떨어 버렸을 것임에도 그녀가 쓴 글에 흔적만 남은 우울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은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몇 개의 필터를 통과해야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필터를 통과한 물이 맑아졌다고 해서 끝이 난 것도 아니다. 마치 정화조의 필터처럼 필터에 걸린 군더더기들은 언젠가는 청소해야 할 일이다.

 

 내가 감상이라고 쓴 글들은 모두 작품 속에서 표현된 글들이다.  

예스24 서가에서 가져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