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야고보서 1:12-18)
욥기를 읽으면서 많이 당황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탄이 하나님에게 욥의 믿음을 시험하겠다는 요구를 하는 것에 하나님이 동의를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와 서 있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했습니다. “땅에서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다 왔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욥을 유심히 살펴보았느냐? 땅 위에 그런 사람이 없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한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이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했습니다. “욥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주께서 그와 그 집안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의 사면에 울타리를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주께서 욥이 손대는 일에 복을 주셔서 그 가축이 땅에서 늘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께서 손을 뻗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쳐 보십시오. 그러면 그가 분명 주의 얼굴에 대고 저주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그의 모든 재산을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가락 하나도 대지 마라” 하시니 사탄이 여호와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우리말 성경, 욥 1:6-12)
스스로 자랑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칭찬하는 것이 몹시도 불편했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자랑을 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괜한 자랑에 사탄이 하나님에게 대드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상황에 하나님이 낚여서 애먼 욥이 고통을 당하고 욥의 고통을 위로한답시고 온 사람들은 오히려 욥을 책망하며 가르치려 교만을 떱니다. 저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인간 마리오네트 인형설'에 매우 큰 반감을 가졌습니다. 큰 아픔을 겪은 욥이 신원되고 그의 재산이 회복되었다고 한들 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사는 인생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대일 양육과정에서 제가 인상 깊게 외웠던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10:13이었습니다. 작던 크던 유혹과 어려움을 겪었던 제가 지금껏 이 정도라도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이 구절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여러분이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을 당할 때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우리말 성경, 고린도전서 10:13)
제가 겪은 모든 시험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내게 주어졌던 것들이지만 하나님은 그 시험을 감당할 능력도 제게 주시고, 제가 너무나 힘들어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여 주신다는 말씀에 제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궁극적 이유를 설명하시고, 앞으로의 어려움도 서슴없이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욥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했지만, 저는 욥을 보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지 않았습니다. 배신을 당한 욥처럼 살기 싫다는 반항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안도감을 느낀 것은 나의 진심이었습니다. 믿음에 있어서조차 나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하나님을 믿는 저의 모습이 세상을 살면서 그토록 싫어했던 모사꾼들의 처세술인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어쨌든 그게 제 모습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QT를 한 구절은 야고보서입니다.
누구든지 시험을 당할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누구를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해 죄를 낳고 죄가 자라 사망을 낳습니다(우리말 성경, 야고보서 1:13-15)
제가 과거에 치렀던 시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시험은 내가 욕심에 이끌려 유혹에 빠졌기 때문에 시험에 빠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정신이 쏙 드는 말씀입니다. 저는 욕심이 이끄는 유혹에 빠져 죄를 낳았고 그 죄가 커져서 정신적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주신 시험이 아니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제 경험칙이 증명합니다.
욥기와 고린도전서와 야고보서의 구절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기에는 아직 저의 공부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시험은 없지만 사람이 받는 시험을 허락은 하신다는 설명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주는 것이나, 허락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마도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에 빠져 죄를 짓고 그 죄를 회개 않고 죄를 키우는 자들의 사망을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들의 죄와 사망의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심지어는 피할 길을 마련해주시는 것인가 생각도 해보지만 요량 부득입니다. 혹시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죄짓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자유 행동을 알면서도 허락했다는 말인가? 생각도 해보지만 이해에 이르기는 논리 박약입니다. 그러나 하나 달라진 것은 제가 시험에 들게 하는 욕심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는 자신감입니다.
믿음은 욕망을 바꾸기에 저는 욕심에 이끌린 유혹이 아닌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때, 무괴아심을 아내가 가훈으로 정했는데, 제 믿음의 과정에서 새삼 기억하게 합니다. 믿음은 욕망을 바꾸고 감각을 섬세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 무괴아심과 함께 윤동주의 서시 중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시인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습니다. 저의 욕망은 시인의 섬세함이며 아내가 만든 가훈을 현실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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