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행함 있는 믿음을 보이라(야고보서 2:14-26)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뒤따릅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실천이 어렵거나, 실천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를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위선’이라고도 하지요. 거짓 믿음인 것입니다. 과거 국방이 최우선의 국가목표라며 많은 예산을 끌어 쓰고도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던 장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던 국방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고 돈을 쓰기 위한 수단이었지 그들의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한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그래서 엊그제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이 될 정도라면 전시작전권은 벌써 우리 손에 들어와도 될 정도의 국방기술과 전쟁억지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많은 식자들이 독재정권의 현실적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인정한 것입니다. 현실의 독재권력이 하도 방자하고 잔인하여 숨을 쉴 수도 없었다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식자들은 현실에서 독재정권에 곡학아세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386세대가 현실정치의 주역이 된 것은 다행입니다. 물론 그들이 지금은 세상의 변화를 막는 기성세대로 장벽이 된 느낌은 있지만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가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저는 봅니다. 젊은 세대들의 정제된 믿음들이 현실에서 실천되길 기대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극복한 것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제가 주장한 ‘조선인 엽전론’을 인정한 것 때문인지, 항상 외세에 의존한 관성 때문인지, 토착 왜구가 살아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이간질하는 현실이 완전히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생산에 중요한 자재를 수출 금지한 일본에게 당장 달려가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라는 주장은 얼른 보면 현실에 부합하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실상 우리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패배의식 때문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최종 생산품을 만드는 회사는 부품과 자재를 바꿀 능력과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습게 생각한 것은 일본 정부의 오만함도 있었겠지만 우리 안의 토착 왜구의 부응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아직도 대일 무역적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행동이 바뀌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바둑의 승부수로 생각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거절하여 일본과의 일전을 결정한 것은 지도자의 믿음과 그에 토대한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합니다.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대선주자가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졌다고 주장을 합니다. 미군은 자칭, 타칭 해방과 함께 한반도의 남쪽을 점령한 점령군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미군이 철군 후 6.25 전쟁을 겪고, 한반도 남쪽에 주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인정하고 승낙한 주둔군의 지위를 가집니다. 이것이 역사를 보는 옳은 시각입니다. 이념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책의 목적과 수단 등을 가리기 위한 방편일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정책의 철학과 목표, 수행 수단을 확인하고 집행과정에서의 목표 일치도를 확인하는 실용적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에 이념의 숫돌에 간 낡은 식칼을 들이대고 썰어 대는 태도는 사람을 속이는 전형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 숱하게 보았습니다. 정치의 전문가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효율성이 아직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용적인 비판과 실용적인 대응으로 정책이 맞붙는 대선 과정을 기대합니다. 정치는 정책의 대결이라는 믿음이 현실에서 실천되기를 희망합니다.
주말에 밀렸던 QT를 몰아서 했습니다. 종종 있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1:19-27, ‘말씀을 받고 실천하라’는 내용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겸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삶을 통해 ‘경건’을 증명하라는 말씀입니다. 말이 아닌 열매로 경건을 점검하라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2:1-13,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은 최고의 법인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를 지키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음으로 내 삶에서 행함을 통해 열매를 맺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1. ‘불신 지옥, 예수 천국’이라며 선교하는 내용은 불신자를 차별하여 지옥에 빠지라는 차별의 저주가 아닌지요?
2.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요?
3. 차별방지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닌지요?
묵상이 짧아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강호 고수들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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