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가도 ‘트럼프 시대’는 남는다. 시사in읽기 천관율 기자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해도, 아직 바이든의 승리가 법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트럼트가 자기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이용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도 속수무책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의 기사가 도움이 되어 정리한다.
1. 트럼프의 4년은 반짝 해프닝이 아니라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정치가 소유의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하면서 나타난 거대한 흐름이다. 피케티를 통해 트럼프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들여다본다.
2. 트럼프 시대의 요체는 이렇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뒤처지고, 소외된, 인종과 젠더 말고는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우파에 투표합니다. 그 결과 ‘고소득자(이들은 원래 우파에 투표합니다)와 백인 소외계층 연합’이라는 아주 독특한 우파 투표블럭이 탄생합니다. 트럼프는 이걸 두 번 만들어냈습니다. ‘고소득자와 백인 소외계층 연합’은 대중 민주주의 시대가 열린 후로 가장 수수께끼 같은 구조변동일지 모릅니다. ‘뒤처진 사람들을 대변하는 좌파 정당’은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기본 문법인데, 이게 흔들리는 겁니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한 방법으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포퓰리즘’입니다. 대중의 비합리적 열정이라는 뉘앙스를 깔고 있는데, 이것으로 수수께끼는 풀렸다기보다는 그냥 사라집니다. 비합리적이라 그렇다. 끝.
3.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구조를 다룬 (21세기 자본)으로 슈퍼스타가 된 프랑스인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포퓰리즘’이 무언가 심대한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않고 얼버무리는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그는 “내가 보기엔 ‘포퓰리즘’이라는 통념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의 분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4.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1960년대에, 좌파 정당의 지지기반은 저학력. 저소득 노동자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 대졸 유권자가 좌파 정당 지지층으로 떠올라서, 21세기에는 대세가 됩니다. 대학에 가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들은 진보성향이 강했습니다. 피케티는 신작에서 정치의 기본 갈등축이 두 개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는 ‘소유문제’ 또 하나는 ‘경계문제’입니다. 소유 문제란 경제적 자원을 재분배하고 불평등에 맞서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유권자들은 재분배에 대한 견해로 갈라집니다. 피케티는 소유 문제의 양편을 평등주의와 불평등주의로 부릅니다. 경계 문제란 어디까지가 ‘우리’인지 판단하는 문제입니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외국인을 빼면 평등권 침해라고 지적했는데, 그걸 수용하지 않은 것이 경계 문제가 정치의 갈등축이 되는 사례입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선 문제는 인종이었습니다. 21세기 선진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선 문제는 이민입니다. 이민은 인종과 종교가 뒤엉켜 있는 경계 문제의 정수입니다. 피케티는 경계 문제의 양편을 국제주의(경계선에 관대한 태도)와 토착주의(경계선에 엄격한 태도)로 부릅니다.
5. 기본 갈등축 두 개를 조합하면 사분면을 그릴 수 있고 가능한 정치 노선은 네 개가 나옵니다. 그래픽을 삽입할 능력이 안 되어서 대충 알아볼 수 있게 표로 그립니다.
(소극적 재분배)
1분면:토착주의. 불평등주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유무역에는 시큰둥했지만, 부자감세에는 열정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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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면:국제주의. 불평등주의 -미국 민주당 주류가 여기에 가깝고 -공화당 옛 주류는 더 선명하게 여기에 있음. -서구 정치 주류(좌우파 모두) |
3분면:토착주의. 평등주의 -프랑스의 극우파 지도자 마린 르펜 |
4분면:국제주의. 평등주의 -버니 샌더스의 노선 |
(적극적 재분배)
6. 이제 피케티가 ‘포퓰리즘’이란 설명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피케티의 사분면에서 보면, 버니 샌더스와 마린 르펜과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 노선이 다른 정치인입니다. 특히 샌더스와 트럼프는 아예 정반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포퓰리스트’로 불렸습니다. 국제주의적이면서 재분배에는 소극적인 태도(국제주의. 불평등주의)가 서구 정치의 주류였기 때문에, 주류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정치노선들이 모두 ‘포퓰리스트’로 뭉뚱그려 불렸다는 겁니다.
7. 이 사분면에서 진정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서구 정치의 좌파와 우파가 모두 ‘국제주의. 불평등주의’ 블록(위 표에서는 2분면)에 모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파는 여기가 원래 자리여서 그렇다지만, 좌파는 왜 이 자리에 와 있을까요? 피케티는 좌파 정치가 원래 자리인 ‘국제주의. 평등주의’에서 ‘국제주의. 불평등주의’로 서서히 미끄러졌으며, 이것이 1970년대 이후 정치가 고장 난 근본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좌파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8. 1970년대 이후 선진국 좌파 정당들은 불평등 문제를 다룰 역량을 갈수록 잃어갔습니다. 거대한 두 조류, 세계화와 고학력화 때문입니다. 세계화는 국가 차원에서 재분배 정책을 펼 공간을 좁혔습니다. 이제 기업이나 부자에게 세율을 높이려고 하면 이들은 더 연결된 세계를 타고 조세를 회피합니다. 역으로 정부가 세율 덤핑 경쟁을 펼치는 처지로 몰렸습니다. 이러면 재분배의 도구는 사라집니다. 이러자 저학력. 저소득 노동계층이 좌파 정당에서 이탈했습니다.
9. 초중고 교육을 확대하면 매우 뚜렷하게 평등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고학력화는 아직까지는 불평등의 동력입니다. 좌파 정당이 대졸자의 당이 되는 경향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관심사로 좌파 정당을 끌어당겼습니다. 저학력 유권자는 이탈하고 고학력 유권자가 유입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20세기 후반부터 좌파 정당은 세계화와 고학력화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도전에 답을 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세계화에 맞서 국제적인 재분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면 초국가적인 정치 역량이 필요한데, 그런 건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초국가 정치단위인 유럽연합은 재분배 질서를 만들기보다는, 재정지출 자율성을 옥죄는 등 각국의 재분배 역량을 제약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10. 샌더스 현상, 트럼프의 승리, 북서유럽의 극우파 약진을 한데 묶을 말이 있다면 ‘포퓰리즘’이 아니라 ‘주류 정치의 실패’일 것입니다.
11. 피케티의 렌즈를 적용하면, 우리가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트럼프 시대는 정치가 소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후 분출하는 온갖 반작용 중 가장 굵직한 줄기입니다. 토착주의가 더 나은 답을 내주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지만, 그럼에도 경계의 문제는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갈등축입니다. 트럼프와 북서유럽 극우파는 강력한 토착주의 덕분에 정권을 잡거나 유력한 대안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소유의 문제가 실패한 자리에 경계의 문제를 끌고 들어오는 전략은 집권에 다가갈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12. 반면에, 소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21세기판 국제주의. 평등주의 노선은 아직 성공 사례가 없습니다. 경계의 문제가 누군가 경계선 밖의 적을 비난하는 것으로 간편하게 작동하는 반면, 소유의 문제는 대안 프로그램을 요구합니다. 20세기에는 복지국가 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21세기에는 세계화와 고학력화등 새 시대의 도전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아직 불투명합니다. 샌더스도 워런도 “현실을 모른다”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다”라는 의구심을 해소하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토착주의 노선은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를 국제주의. 평등주의 노선은 감당해야 하므로 전망은 늘 뿌옇습니다.
13. 우리는 아직 트럼프 시대의 또 다른 중대한 특성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시대는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지는 일련의 규칙 붕괴를 또 다른 축으로 합니다. 트럼프라는 강력한 개성을 매개로, 둘은 이어져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권력을 돌려준다는 원리는 지극히 민주적입니다. 트럼프는 그걸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을 해킹하는 방식으로 작동시킵니다. 트럼프 집권기의 여러 역설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역설이 이것입니다. 민주주의 최대의 장점은 ‘권력 승계의 안전성과 예측 가능성’입니다. 권력 승계 절차를 뒤흔드는 공격은 그러므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해킹인 셈입니다.
시사인이 주간지인 관계로 결과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기사를 썼다. 단순히 결과를 예상하는 기사가 아니라 미국의 시대 흐름이 트럼프 한 사람의 퇴장으로만 사라지지 않는 거대한 물결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시대 흐름의 깊은 뿌리를 찾아가는 기사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인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패거리들의 패악질이 후진국의 구태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 세력이 되기는 힘들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좌파 정치의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제도를 보완하여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을 해킹하는 것을 방지하며, 어떻게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음의 기사는 트럼프의 해킹 전략이 될 것이 100%다. 기대된다. 천관율 기자.
노파심으로 한 말씀드리자면,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글쓰기 공부 방법 중의 하나인 필사로 이해하셔도 좋겠고, 한 번 읽고 어딘가 처박아두고 잊혀져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해하셔도 좋겠다. 학창 시절 나의 공부 방법은 교과서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직접 글로 정리하면 그러는 중에 내용의 골격이 이해되고 정리 후에는 정리한 것을 암기하는 방식이니 효율적이었다. 내 글을 내가 외우는 것이 남의 글을 외우는 것보다 쉬웠다. 이와 관련한 나의 경험담을 말하면 대학 1학년 교양과목으로 들은 ‘교양 체육’(강의 제목은 정확한 기억이 어렵다) 교과서 약300~400페이지 분량을 시험 준비를 위하여 대학 노트에 정리를 했다. 노트 분량은 교과서의 1/10 정도로 기억한다. 같이 수강하던 학생이 정리 노트를 빌려서 보고 싶다고 해서 빌려줬다. 시험이 임박하여 강의시간에 들리는 말이 학교 앞 복사실에 ‘교양 체육’ 요약집을 판다고 해서 나도 하나 살까 하고 갔다. 그런데……팔고 있는 요약집이 바로 나의 정리 노트였다. 황당하기도 했고, 많은 학생들에게 편의를 준 것 같기도 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나의 노트를 빌려가 팔아먹은 녀석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컨대 이 글을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불법으로 게재하는 것으로 오해 없길 바란다는 말이다.
이 글로 인해 시사인 구독자가 단 한 분이라도 늘면 좋겠다. 좋은 언론은 우리를 공부하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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